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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이슈와 의식

동아시아 경제 구조와 이념의 특징

지금까지 동아시아와 미국 간의 무역과 환율 전쟁에 대해 대략 훑어보았습니다. (아래 링크)

미국의 무역 적자와 재정적자
중국과 미국의 환율 전쟁

이제 미국과 아시아간에 무역 격차가 나는 근본적 원인에 대해 접근해야 할 차례입니다.

결론적으로 동아시아와 미국 사이에 무역 분쟁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두 지역 간의 경제적 이념 차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경제적 이념 차이를 알기 위해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특징이 무엇인가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긴 페이지를 통해 이를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 왜 미국은 무역 적자를 보일 수 밖에 없는 지 다루겠습니다.

미국식, 또는 더 넓게 보아 서구식 자본주의의 기본 개념은 이윤이 개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기업이 경제적 행위를 하고 돈을 버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과 기업을 위한 것입니다. 영미식 자본주의는 이에 가장 철저한 사회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탈세나 파렴치한 독점과 같은 법에 저촉되는 반시장적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한 그가 얼마를 벌거나 또는 얼마나 가격을 매기느냐를 가지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독일과 프랑스와 같은 유럽 대륙의 자본주의는 이와 달라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유럽이나 미국이나 기본 바탕은 이윤은 이윤을 창출하는 자에게 돌아간다는 것과 국가는 특정 집단을 지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동아시아형 자본주의는 이와 성격이 다릅니다.
동아시아에서 기업이 발생하고 그 기업이 성장하는 배경은 한 개인이 이윤 창출을 위해 만들고, 시장 안의 경쟁에서 이기고 이윤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영미식은 이윤을 기업이 고스란히 누리고, 독일식은 이윤의 어느 정도를 사회와 공유할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기업들은 나라의 지원에 의해 성장하고 나라를 위해 존재한다는 개념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기업이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동아시아의 경제 구호는 개개인의 번영과 행복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발전입니다. 개인이 주도하는 혁신은 개인이 속한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지만 국가 개입 경제는 그보다 나라 전체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동아시아형 기업문화의 출발은 20세기 전반, 제국주의 일본에서 비롯됩니다.
일본의 재벌들은 일본의 군국주의 팽창을 위해 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키워졌습니다. 이른바 6대 재벌이라는 것이 관료와 군부의 비호 아래에서 각자 독점 영역을 가지고서 일본 경제를 삼키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 기업들의 이윤은 국가에게 환원됩니다. 기업주들이 이윤 창출을 위해 국가의 필요를 위해 필요한 물품을 국가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일본식 자본주의는 이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지속됩니다.
일본식 경제 모델의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
일본은 패전 직후 나라 차원에서 미국 경제를 따라잡자고 나섭니다. 그리고 수출하는 기업들을 위해 정관계가 합심하여 돕습니다. 수출하는 기업들에게 금융 지원, 수출 보조금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것은 일본 제품들이 낮은 코스트를 유지하고 가격 경쟁력을 갖도록 돕습니다만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불공정 무역행위일 뿐입니다.

싼 가격의 제품.
일본 기업의 경영 철학은 박리다매 전략입니다. 이윤 추구 전략보다 매출 중심 전략입니다. 이윤의 극대화보다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에 촛점을 둡니다. 싸게, 그러나 많이 팔자는 것입니다. 이 전략은 고용 효과를 극대화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손이 많이 필요하니까요. 전통적으로 일본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낮은 실업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단점은 뭘까요? 업무량에 비해 벌어들이는 돈이 적다는 것입니다. 이윤이 낮은 사업을 하다보니 종업원들에게 돌아가는 돈도 많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일벌레로 소문난 나라입니다. 최소한의 마진을 남기려고 사업을 벌이다 보니 직원들에게 과도한 업무량이 부과되지 않을 수 없고 임금은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인을 두고 이코노미 에니멀, 경제 동물이라고 서양인들이 비아냥댄 것은 이런 점을 두고 한 말입니다. 기업이 물건을 엄청 팔아대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장사를 합니다. 일본 기업들의 영업마진율4% 정도입니다. 이는 유럽과 미국 평균인 20%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기업가들은 물건 다섯개 팔아야 미국이 하나 파는 것만큼의 이득을 챙긴다는 것입니다.

Double economy. 이중경제.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높다하지만 이는 수출을 주로 하는 일부 대기업의 이야기입니다. 일본 전체의 생산성은 미국의 70% 수준도 되지 않습니다. 이는 수출이 아닌 내수 위주의 기업들의 경쟁력이 상당히 낮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제를 놓고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본을 놓고 수출 주도형 경제라고 말하는 것은 뭔가 어폐가 있습니다. 일본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나라보다 높지 않습니다.

(위 표는 2008년에 주요 국가들의 무역 비중이 자국 GDP에서 얼마나 차지하는 가를 보여줍니다. 내수 규모가 큰 미국이 12%입니다. 이것도 그나마 많이 상승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7% 정도 였습니다.)

그동안 일본의 수출액이 GDP에 대비하여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5% 정도로 미국의 10%를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독일의 경우는 40%를 넘습니다. 그러나 독일더러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본보고는 수출주도형이라고 부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일본 경제 구조가 그 얼마 안되는 수출을 최적화시키는 방향으로 전 경제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정치와 관료의 주도로 말입니다.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국민들이 힘을 모으고 자신들의 몫을 기꺼이 버리기도 합니다. 사회 전체가 협력해서 국가 주도 경제 성장을 추구합니다. 수출 달성량을 채우고 높은 경제 성장율을 기록하고. 그러나 이른바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이 됩니다. 그래도 나라의 발전을 보며 흐뭇해 합니다.


이는 서양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가 안되는 일입니다. '쟤들은 도대체 왜 일을 하는가?'

서양인들에게 왜 일을 하냐고 물으면 자기의 삶을 위해서 돈을 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과장 좀 섞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내지는 서양을 따라잡고 이기기 위해서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내'가 중심이 되는 개인 주의가 아니라 국가 주도, 민족 중심 가치관을 사회 안에서 배우고 형성해 나갑니다. 그리고 전체의 가치를 위해 작은 것들의 가치는 기꺼이 희생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이는 일본 뿐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서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동아시아의 유교주의적 자본주의입니다. 개인의 능력과 개성 발휘보다는 협동과 단체의식, 애국심이 더 큰 덕목입니다.

대기업과 국가가 서로 협조하는 일본식 자본주의.
전체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가치가 희생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국가 중심 일본식 봉건주의에 뿌리를 둔 일본식 자본주의는 하드웨어 중심의 대량 생산시대인 7-80년대에 위력을 크게 발휘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적극적인 활동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다품종 소량 생산시대인 90년대에 들어와 일본 경제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맙니다. 개인적으로 나서기 두려워하는 일본. 사회 진입장벽이 높은 일본. 창업이나 모험, 도전을 두려워하는 일본인들입니다. 그들의 투자 방식은 매우 소극적이어서, 일본의 위험 회피율은 세계 상위권 수준으로 소극적이고, 일본의 창업률은 OECD 최저 수준입니다.

위 표는 선진국 사이에서 기업가 정신, 창업 인프라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각 항목에서 점수가 높을 수록 창업의욕이 강하다는 것인데 Japan(일본)의 경우는 모든 부분에서 최하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밑의 우리나라, Republic of Korea와 비교해 보십시오.United States가 미국이고 United Kingdom은 영국입니다.

재벌경제.
비록 6대 재벌은 해체되고 재벌 가문은 지분을 잃어버렸으나 재벌에 속해 있던 기업들은 '계열'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결착관계를 유지합니다. 일본의 6대 계열사는 한국의 재벌보다 더 결속력이 강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계열사들은 계열에 속한 은행을 중심으로 서로 상호 출자, 상호 보증을 합니다. 계열사들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본 기업 문화, 자본주의 문화의 특징은 고립적이고 폐쇄적이라는 것입니다. 각 계열사들은 구조적이고 조직적, 관례적인 진입장벽을 형성합니다.

정경유착.
일본식 자본주의는 국가가 기업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경쟁은 자유경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위해 유도됩니다. 일본식 경제 모델은 사람들이 국가에 공헌하도록 교육합니다. 일본의 정경유착은 정관계 인물의 은퇴 이후 계열사에의 낙하산 인사로 절정을 이룹니다.

폐쇄경제.
수입을 하지 않는 나라. 외부인들에 대해 폐쇄적인 경제. 섬나라 국민이라서 그런지 외부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피해의식과 불신, 경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5년 엔 플라자 합의 이후 증가된 구매력으로 일본은 해외자산을 대거 사들이지만, 그들의 폐쇄성은 해외 투자 유치를 이끌지 못합니다. 1993년 일본의 해외 투자 대비 외국의 일본 투자 비율은 171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일본이 외국에 17을 투자하는 동안 외국은 일본에 1만 투자한 것입니다. 극도의 투자 역조현상입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들자면 독일 1.4 1, 프랑스 1.31, 미국, 영국 각각 1.11이었습니다.

현재 일본 재정부채가 세계에서 제일 높다(GDP의 220%)고 하지만 그 부채의 90% 이상이 자국 내의 자본입니다. 외채를 기피하는 일본입니다. 중국이 10억달라 규모의 일본 국채를 구입하자 일본 정부에서 드러내놓고 경계론 위기론을 펴서 결국 중국이 되팔게 만들었던 적이 불과 몇달전입니다.

플라자 합의는 엔화 절상을 통해 일본인들의 수입을 유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과 서양의 뜻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일본식 기업문화가 빚어높은 높은 진입장벽, 다양한 형태의 비관세 장벽들 때문입니다. 엔화 인상 이후 수입이 늘기는 하였으나 그 늘어난 수입의 대부분은 일본 자본의 해외제휴회사들(중국, 인도, 베트남 등)입니다. 

일본의 자본주의와 기업문화에 대해서 일단 이정도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열거한 일본식 경제 모델을 보면서 우리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사실상 거의 판박이에 가깝습니다. 한국 경제성장 모델은 일본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본딴 것입니다.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 정경 유착에서 부터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경제관까지 말입니다. 이는 일본과 한국에서만 공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멸사봉공을 부르짖은 장개석의 대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광요의 싱가폴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고 최근에 등장한 완결판이 바로 중국입니다. 

동아시아형 자본주의를 만든 것은 일본입니다. 이를 도입해서 발전시킨 것이 한국과 대만입니다. 그리고 이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지금의 중국입니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이 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훨씬 더 인민을 착취하고 있고 벌어들인 외화로 국가 건설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중국의 사상적 특수성입니다. 중국은 동아시아의 유교적 전통 가치를 내재함과 동시에 개인의 행복보다 전체의 이익 추구를 위해 최적화된 사상인 사회주의를 갖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대만이나 그나마 명목상으로 자본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일말의 개인주의 사상이 통용되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민족주의에 사회주의를 접목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내셔널리즘을 이룩했고 그를 통해 경제 발전과 국가 건설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다음 글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한계를 살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