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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이슈와 의식

유럽병이 생긴 원인은 무엇일까?

 

이른바 유럽병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유럽병이란 말은 유럽의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그 결과 경제가 침체되어 낮은 경제 성장율(2010 유럽 평균 1.7%)과 높은 실업율(현재 유럽 평균 10.1%)을 기록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유럽 경제가 정체되고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이 점점 가라앉는 이유를 기업하기 안좋은 환경 때문이라고 하는데 지적되는 요인들은 바로 비싼 물가, 높은 임금과 높은 세금 등입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새로 사업을 추진할 의욕이 낮습니다. 사업의 코스트가 높고 이윤은 적으니까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싼 물가, 높은 임금과 높은 세금이라 함은 상대적인 기준에서 나오는 말이지 절대적인 잣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가가 비싸다고 말하는 것, 임금이 너무 높다고 말하는 것, 세금이 너무 높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들이 유럽 자체의 내적인 환경과 조건들과 부합하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다른 나라들은 어디일까요? 바로 아시아입니다. 7-80년대 일본의 경제 침공에 이어 90년대 한국과 동아시아의 경제 침공,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의 경제 침공이 이어졌고 유럽 경제는 무역을 통해서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게 됩니다. 무역 수지의 손실도 있지만 더 큰 손실은 공장의 해외 이전과 자본의 유출, 그로인한 일자리 감소, 실업율 증가입니다. 미국이 가장 큰 폭격을 당했지만 유럽도 이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아시아의 경제 침공이 없었다면 유럽이 유럽병이란 말을 들을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수 만으로 돌아가는 경제라고 한다면, 물건을 제 아무리 비싸게 만들어 팔건, 세금을 제 아무리 높게 때리건 모든 것은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비싼 물건밖에 없기에 비싼 물건도 팔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고 세금이 제 아무리 높건 나만 그렇게 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경쟁자들도 똑같이 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자유 무역을 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집니다.외국에서 기업하는 나의 경쟁자들은 저임금과 낮은 기업세를 통해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파는데 국내기업들이 관세나 비관세장벽의 보호없이 막강 해외기업들과 자유무역을 한다고 하면 자국 내의 기업들은 견디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장은 문을 닫고 기업들은 외국에 매각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많은 유럽 기업들이 미국, 일본, 중국 등에 매각되어 왔습니다. (물론 미국 기업도 일본, 중국, 유럽에 많이 매각되었습니다. M&A) 정상 가격으로 물건을 팔고 이윤을 남기려고 해도 이웃에서 덤핑 판매를 하면 장사가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무역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보면 이론적으로 무역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균형을 맞추게 된다고 합니다. A 나라가 장사를 잘해서 B 나라에서 돈을 벌게 되면 A 나라는 B 나라에서 돈을 거둡니다. 바로 외환 거래가 있게되는 것입니다. A나라의 물건이 B나라로 건너간 대신 B나라의 돈이 A나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A나라의 통화 가치가 오르게 됩니다. A가 한국이고 B가 중국이라고 예들 들자면 처음에 중국이 저임금으로 한국으로부터 많은 수출을 하고 원화를 벌어들인다면 그 벌어들인 돈이 중국 안의 임금과 물가를 올리고 위안화의 가치를 올려서 한국 물건은 다시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얻게 되어 결국 무역 수지는 제로로 수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교과서와 다릅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 유럽이 자유 무역을 하는 반면에 자기들은 보호 무역을 하면서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극도로 규제합니다.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내수 시장을 순환하면서 임금을 올리고 물가를 올리고 화폐가치를 증가시켜 환율이 낮아지고 수출 가격경쟁력이 줄어들고 수입 구매력이 증가하여 무역의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돈이 소비자 시장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재투자로 이어지고 통화가치를 올리지 않기 위해서 상대방 나라의 채권(주로 미국 국채)을 사고 낮은 통화가치를 유지해 가격 경쟁력을 여전히 유지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축적된 자본과 기술은 상품 경쟁력을 증가시킵니다. 그러므로 무역 역조는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심화되는 것입니다. 아시아는 국가가 인위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정책을 펴왔습니다. 서비스 시장의 가격 인상을 억제하면서 물가를 낮게 유지하여 공장 근로자의 임금 상승 요구를 완화시키고 기업의 계속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유도하여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키고 사회 인프라를 건설해 나갑니다. 그 결과 이제 유럽과 대등한 수준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을 만큼 나라가 발전한 것도 사실입니다.

 

가격 경쟁력 격차때문에 빚어진 무역 역조를 개선하려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임금과 물가가 낮고 환율(통화가치)이 낮았던 나라의 물가가 오르고 환율이 오르거나 아니면 임금과 물가가 높았던 나라의 임금이 낮아져야 합니다. 전자의 길은 아시아 문화로 인해 기대대로 이루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후자의 길 밖에 없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월급과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것을 저항없이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면 유럽의 해결책은 무엇인가요. 자유무역으로 빚어지는 문제를 무역을 중단함으로써 해결할수 있을까요? 자신들은 보호 무역하면서 수입을 막고 상대의 자유 무역을 활용하여 수출을 촉진하는 불공정무역을 하고, 국가 보조금과 금융, 세금 혜택 등을 등에 없고 물건을 제조원가 이하로 덤핑 판매하는 아시아와의 무역을 중단하면 되는 것일까요? 만약 무역을 중단하게 된다면 유럽 소비자들은 큰 곤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물가가 대폭 인상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 코스트 국가인 유럽이나 그 다음으로 높은 코스트 사회인 미국이 그나마 풍요한 삶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무역 덕분입니다. 자국내의 비싼 통화가치를 통해 싼 통화가치를 가진 저개발국가들의 자원과 상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었기에 물가를 억제해서 자신들의 잠재력에 비해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격 싼 아시아 제품들이 사라지면 비싼 물건들을 사야 되고 그렇게되면 물가가 삽시간에 대폭 오르게 됩니다.

 

지금 우리 나라도 그렇습니다. 만약 중국과 무역을 중단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중국산 값싼 농수산품과 공산품들이 시장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물가는 엄청나게 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나라는 OECD 기준에서 물가가 아주 낮은 나라입니다. 유럽의 물가 수준은 우리보다 평균 50%가 더 비쌉니다. 이런 나라들에서 아시아 물품이 사라지는 충격은 한국이 중국 물건을 사지 못하는 충격보다 몇곱절 더 큰 물가 충격을 가져오게 됩니다. 물가가 높아진다는 것은 같은 구매력일 때 생활 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역을 중단한다면 유럽 사람들의 삶의 수준은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무역을 중단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소비자 입장에서의 관점이지 기업하는 생산자 입장의 관점은 아닙니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생산자 입장보다는 소비자 입장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고 반대로 일본이나 한국 중국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소비자 입장보다는 생산자 입장에서 경제를 바라봅니다. 그렇기에 보호 무역주의가 강한 것입니다. 동아시아가 생산자 입장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지배적인 이유는 빠른 경제 성장을 통한 부국강병 논리 나보다 나라와 민족이 더 중요하다는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타고 먹혔기 때문입니다. 그 이외에 외국 소비시장을 수요를 이용해 점프에 성공하는 길이 유럽이나 미국이 발전할 때보다 훨씬 용이해 진 점도 있습니다. 과학 기술, 유통, 보관, 교통, 통신의 발달 및 자유 무역주의의 도래, 국가 장벽, 관세의 완화로 인해 전세계 교역량은 세계의 GDP성장율보다 몇배 더 빠른 속도로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19세기에 바다를 건너 물건을 파는 비용은 막대했지만 지금은 별거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경제의 중심은 내수에서 무역으로 점차 옮겨가게 된 것입니다. 유럽과 미국은 무역의 규모가 아주 아주 작았기에 내수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보다 소비자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졌는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일본과 동아시아는 내수가 아니라 무역을 통해 보다 빠르게 자본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경제 성장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생산자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생산자보다 소비자 입장이 강한 유럽은 결과적으로 많은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실업자들의 생활은 복지 제도,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의 세금을 통해 보전됩니다. 이는 일하는 사람들이 치루어야 되는 댓가가 더 커지는 것이고 그만큼 상품 경쟁력은 더 내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일자리는 더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경쟁력이 계속 악화됩니다. 그리고 실업율이 계속 높아지는 상태를 일컫어 바로 유럽병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실업율이 높아지고 경제가 침체하게 되면 국가 재정은 악화됩니다. 나가야 할 비용은 많은데 들어와야 할 세금 수익은 줄어들기 때문에 재정은 적자를 기록하게 됩니다. 거의 모든 유럽의 국가들은 크건 작건 재정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 재정문제는 고령화 사회를 통한 연금과 의료 비용의 막대한 증가로 인해 앞으로 더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앞으로 예정되어있는 치루어야 할 비용액수가 점점 더 어마어마 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은 극소수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국가들이 장기적으로 갔을 때 파산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미 몇몇 나라들은 파산 상태에 가까왔습니다. 그리고 빚을 갚아야 하는 그들은 한동안 거대한 비용을 치루게 될 것입니다.

 

어두운 미래를 잘 알고 있는 유럽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변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세금을 낮추고 사회 보장 비용을 줄이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신이 시작된 것은 일본 경제 침공이 본격화된 8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경제 기적, 그 이면에는 이런 명암이 있는 것입니다. 보호무역으로 필요이상의 득을 본 나라가 있다면 그로 인해 경제 모순이 발생하는 나라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저임금 때문에 유럽은 점점 더 복지정책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고 이제 중국이란 초강력 저임금을 만난 이상 더 벗어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복지 국가인 유럽은 바로 우리 때문에 복지 정책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는 한국에서 볼때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아직 한국은 복지병같은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나라입니다. 노동 유연성이 낮지만 (해고 비용이 높지만) 사회 보장비용도 낮습니다. 지금까지만 보면 기업을 위한 사회 인프라 측면에서 경쟁력이 아주 나쁘지는 않은데 다가올 미래는 이와 좀 다릅니다. 고령화 문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금을 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올라가는 코스트와 외국 저임금 압박에 의해 유럽이 겪었던, 그리고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고실업률입니다.

 

중국의 발달은 한국에 심각한 도전을 야기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중국제품은 한국제품과 겹치지 않고 있기에 중국의 발달은 한국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중화학공업에 집중투자를 하게 되고 한국의 주력상품과 겹치게 된다면 한국 산업 경쟁력은 심각하게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일자리 중의 많은 부분이 유럽이나 지금 미국이 그러는 것처럼 다른 나라로 날아가 버리고 높은 실업율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과 다른 저개발국가들의 임금이 한국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갑자기 확 오르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역 경쟁력과 실업율을 걱정해서 계속 임금을 올리지 못한 나라는 없습니다. 다수결을 따르는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임금도 후진국에 따라잡히지 않고 오를 수 있는 한 계속 오를 것입니다

 

우리가 중국에 바라는 바는 중국의 임금이 빠르게 오르고 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중국 위완화가 빠르게 절상되기를 바랍니다.생활 수준이 대폭 향상되고 내수 시장이 발달하고, 관세와 무역장벽을 낮추고 자유 무역을 통해 상품 수입이 대폭 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입장에서 보다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유럽과 미국이 지금까지 일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바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지금까지 거부해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지금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변화가 늦을 수록 우리도 유럽처럼 사업의 문제에 관해서 선택의 강요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무역 경쟁력이 없는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높은 실업률로 가던지 아니면 어떻게든 실질 임금과 비용을 감소시켜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들을 유지하던지 말입니다. 어떤 선택이건 자본가보다는 노동자들에게 더 험난한 앞길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 글은 아시아와 유럽 경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문제는 유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아니 미국에는 더 심하게 적용됩니다. 미국은 보다 내수 중심 국가이며 보다 무역이 자유화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미국의 무역 적자가 보다 심해졌습니다.



p.s. 

이 번 글은 총론격으로 시간 관계상, 그리고 읽기 편하도록 출처와 자료를 넣지 않고 썼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을 다룰 때 하나하나 올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