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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이슈와 의식

80년대 일본과 미국의 무역과 환율 전쟁

미국의 쌍동이 적자를 다룬 앞서의 글에 이어.. (클릭)

오늘은 80년대에 벌어졌던 일본과 미국의 환율 전쟁, 그리고 지금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중국과 미국의 환율 전쟁의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저번 글에서 설명했지만 미국의 무역 적자 문제는 80년대 이후 불거지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에 그 중심에 있던 나라는 바로 일본입니다.



표 1) 위 표는 1930년부터 2005년까지의 미국 무역 수지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한때 잘나가던 미국의 무역은 70년대 석유 파동을 맞이하면서 휘청대기 시작합니다. 에너지 비효율적인 미국 제품은 가파르게 올라간 기름값에 적응을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값싼 일본 제품입니다. 소니로 상징되는 전자제품과 도요다로 상징되는 자동차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80년대 일본의 비약적 무역 수지 증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표 2) 위 표는 미국과 일본 사이의 무역 수지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빨간 선이 미국의 대 일본 수출 그래프고 파란선은 일본의 대 미국 수출 그래프입니다.

일본의 대미 수출액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 입니다.
1981년에서 1985년 사이에 미국의 대 일본수출은 정체해 있는 반면 미국의 대 일본 수입액은 두배로 증가했고 1985년에 일본의 무역 흑자는 엔화로 18조엔이 넘습니다.
미국 자료에 따르면 1980년에 200억 달러 였던 대일 수출액은 1986년에 250억 달라로 겨우 50억 달러 증가하나 수입액은 같은 기간 300억 달러에서 800억 달러로 두배 이상 증가합니다.

일본 전체 무역 흑자의 규모는 1980년에 일본 GDP의 겨우 0.1%에 불과했으나 1986년에는 4.6%로 증가합니다.

이런 일본 경제의 승리의 힘은 일본 제품의 우수성에도 있었겠으나 거시적인 가장 큰 요인은 환율이었습니다.

1973년 제 1차 석유파동, 1979년 제 2차 석유파동은 전세계를 강타합니다. 급격한 유가 인상으로 인해 모든 국가들의 인플레이션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1970년대는 전세계에 자유와 진보, 인권에 대한 사상이 정점을 이루던 시기로 미국 또한 케인지안 학파가 지배하는 때였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분배가 잘 이루어지고 가장 평등하던 시기, 중산층의 소득 수준이 가장 높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경기 침체인데 물가도 오르는 것입니다. 경기가 침체하면 물가가 내려야 한다는 것이 기존 경제학의 정설이었는데 이건 반대의 흐름으로 갑니다. 물건은 안팔리는데 물가는 계속 오르는 것입니다. 소비는 더더욱 안 이루어지고 실업률은 10%를 넘습니다.

1970년대 전세계를 지배한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은

1. 무엇보다도 공급요인의 측면으로서 유가 인상입니다.

2. 그리고 빠른 임금 인상도 이에 공헌하였습니다. 생산성의 증가를 넘어서는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부르게 됩니다.



표 3) 위 표는 미국의 총 국내 소득에서 종업원 임금이 차지하는 부분입니다. 6,70년대 임금의 몫이 급격히 증가하다 80년대 들어 가라앉습니다. 이는 80년대 들어 실질 임금 인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평균 임금 상승은 시간당 30년 0.53, 40년 0.67, 50년 1.55, 60년 2.54, 70년 3.93, 80년 9.12, 90년 14.41, 00년 19.36달러로 변합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격차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70년대에 십년 동안 임금이 거의 세배 가까이 증가한 것에 반해 다른 시기는 평균 50% 정도만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폴 크루그먼을 비롯한 진보 경제학자들이 70년대를 그리워하는 것은 이런 측면이 있습니다.

3. 그리고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못하였기에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하기 보다 계속 재정을 풀어댔습니다.



표 4) 위 표는 미국의 명목 이자율과 실질 이자율의 변화로서 70년대에는 실질 이자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정책을 펴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럼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어떠했을까요?



표 5) 보라색으로 표시된 것이 물가 상승율입니다. 미국의 물가 상승율은 1975년에 12%를 넘고, 1977년에 6%선으로 내려가다가 1980년에 다시 14%를 넘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일인당 실질 소득 성장율은 각각 십년간 60년대 32%, 70년대 23%, 80년대 25%, 00년대 23%를 기록합니다.
보다 자세한 자료를 원하시는 분들은
http://www.measuringworth.com/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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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업에 지친 미국 국민들은 진보의 70년대를 뒤로 하고 보수주의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 결과 레이건이 당선됩니다. 레이건과 당시 FRB 의장인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정책을 폅니다.
그것은 바로 이자율의 인상입니다.

표 4로 되돌아가 보면 보라색 선은 명목 금리 수준으로 정책 금리의 영향을 받습니다. 80년에 들어서서 명목 이자율은 20%가까이 오릅니다. 고금리 정책은 미국의 통화량을 수축시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강한 달러입니다.

미국은 의도적으로 강한 달러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플레이션을 잡을려고 금리를 대폭 올리다 보니 달라 가치가 평가 절상된 것입니다.



표 6) 위 표를 보면 1981년에서 85년 사이에 미국 달라가치가 강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0년대까지 엔화를 제외하고 다른 통화에 비해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달라는 80년을 기점으로 모든 통화에 대해 강세로 들어섭니다. 81년에 1달라당 220엔이었던 것이 85년에 240엔으로, 80년 0.42파운드에서 85년 0.77파운드로, 1.8마르크에서 2.94마르크로, 4.2프랑에서 8.98프랑으로 증가합니다. 그리고 그에 발맞추어 미국의 무역수지는 급격히 악화되는 것입니다. 표 1)

일본의 무역이 급팽창하는 것도 바로 이 80년에서 85년 사이입니다. 그리고 이런 무역 역조 현상을 되돌리자고 미국은 1985년 7월에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과 만나 달라 대비 엔화의 가치를 50% 절상하고 그 외에도 마르크와 프랑의 가치도 절상하는 데 합의하는 것입니다.

플라자 합의 이후 미국의 무역 역조 현상은 완화됩니다. 대일 무역 적자 폭을 줄이는 데도 성공합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액수는 줄어 들지 않습니다만 일본의 구매력 증가로 인해 수출은 두배 증가합니다. 그 결과 무역 적자 폭을 어느 정도 줄입니다. 90년까지 환율 조정은 미국의 근심을 줄이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타자가 등장합니다. 그것이 바로 중국입니다.



표 7) 위 표는 미국의 무역 적자에서 일본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1990년까지는 일본의 몫이 30%에서 50%를 차지합니다만 일본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중국이 새로이 부상합니다. 2000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의 폭이 일본을 넘어서고 2005년에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하는 것은 중국입니다. 30%의 비중입니다. 상대 비중이 아닌 절대 액수로 계산하면 중국의 상승폭은 훨씬 어마어마 합니다.

다음 편에 중국 환율의 문제, 환율 메커니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경제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