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국인 할아버지가 나에게 미국과 중국의 교육의 목표나 스타일의 차이점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중국은 교육을 통해서 소수의 몇몇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하려는 것 같고 미국은 사람들을 조금씩 레벨업시키려는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백퍼센트 공감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미국이야말로 소수의 뛰어난 인재가 그 어느나라보다 많이 나오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말을 듣고 난 후 확연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다. 미국과 동양의 교육 방식이나 철학에 관해 나름대로의 관점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교육을 학생들의 수준을 높이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면, 한국은 뛰어난 학생들을 선발하고 걸러내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생각과 비슷한 듯 하지만 한국의 교육에 대해 보다 냉소적인 표현이다.
왜 내가 이런 말을 했을까? 그것은 한국의 교육이 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현실 때문이다. 내 생각은 이러하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의 교육목적은 지식의 전달이나 학생들의 사고력 향상에 있지 않다. 솔직하게 보자. 한국의 공교육은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이 시험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운전면허시험처럼 일정한 수준만 넘으면 가질 수 있는 절대평가일까? 그렇지 않다. 소수의 정원을 선택하기 위한 상대평가이다. 여기서 한국과 미국의 시험 제도에서의 큰 차이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미국에서 시험에서의 합격점수란 '미니멈 콸러파이드 커트라인'(Minimum Qualified Cut-line)과 같다. 최소 자격 점수를 넘는다면 그 이상의 점수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당신은 지원자격이 있다' 이 정도의 의미가 부여된다. 미국에서의 모든 시험은 운전면허시험과 같은 절대 평가 방식이다. 일정 점수 이상이면 시험 성적은 합격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은 다르다. 절대적인 점수를 몇점을 맞았느냐 보다 몇등을 했는가가 평가의 핵심이 된다. 그 이유는 시험 성적 순으로 일등부터 꼴찌까지 가르는 상대평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만족할 만한 점수를 얻었어도 나보다 더 좋은 점수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나는 탈락하고야 만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시험이란 지원자를 떨어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미국의 시험은 지원자를 붙이기 위해 있는 것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이란 시험제도를 위해 존재한다. 그것은 어떻게 보자면 모든 사람을 다 끌고 가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교육 과정 이수후 뛰어난 인재를 가리고 발굴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위해 상대평가제도라는 시험이라는 것을 만들고 학생들이 경쟁적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을 뚫은 사람들에게는 그 노력을 보상해 주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미국에서는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사람을 줄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미국 대학 입학 시험이라는 SAT를 보자. 학생들은 SAT를 자기가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있다. SAT는 절대적인 평가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점은 SAT는 지식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어능력과 (한국으로 말하자면) 중학교 수준의 산수능력. 이를 통해 논리력과 이해력을 측정한다. 이것은 미국 고등학교 교육과 SAT는 전혀 다른 영역을 다룬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 고등학교 교육을 이수한다고 SAT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리라고 말할 수 없다. 둘은 별다른 상관 관계가 없다. 그렇기에 미국 고등학교는 SAT에 대한 부담이 없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시험이 아니라 내신이다. 그리고 대학교에서는 이 두가지를 동시에 고려한다. 시험은 지원자가 얼마만큼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기준이고 내신 성적은 그의 학업성취도를 고려하는 부분이 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에서는 한번의 전국평가로 한 학생의 잠재력과 더불어 학업성취도를 평가내린다. 어떻게 보면 너무 행정편의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사과정에서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행정편의주의. 학생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다.
자 그리고 SAT가 끝나고 대학을 간다면 그것이 끝일까? 그렇지 않다. 편입의 기회가 있다. 편입을 통한 졸업에 관해 미국에서는 아무런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최종 학력이 중요하지 최초 입학점수가 중요하지 않다.
시험제도와 평가제도만 봐도 한국과 미국의 교육 철학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지 않나 싶다. 골라내기 위한 교육과 길러내는 교육 말이다.
골라내는 교육은 시험 후에 남는 것이 없다. 합격의 환희나 실패한 후의 후회. 그리고 시험을 위해 암기했던 지식들?
길러내는 교육은 학생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기회를 찾을 수 있게 돕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그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사회는 보다 훌륭한 사회 구성원들을 충원해 나갈 수 있다. 교육은 사회적인 측면에서 인적자원개발과 관리를 담당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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