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승만 박사는 우리 민족에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남겼죠.
흩어지지 않고 뭉치는 것은 강한 적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그렇지만 무엇을 위해 뭉치는 가 하는 질문은 중요합니다.
단지 살기 위해 뭉치는 것이라면 뭉치고 난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죠.
제가 미국 교포 사회에 속해 오래 살아본 것도 아니고
그러니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것은 단지 저만의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둡니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회에 잘 동화하지 못하고 따로 겉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은 있는데
그것은 교포 1세대들에게 주로 적용되는 것이죠.
미국에 건너 오면 영주권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죠.
오래 살다 보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됩니다. 그 기간은 어떤 직업을 가지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보통 5년 잡죠.
영주권을 얻게 되면 비자없이 살 수 있기에 신분에 제약이 사라집니다.
영주권이 없으면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피할 수 없겠죠.
회사에서 영주권이 없는 사람을 뽑으려면 부담을 지기도 하고 그래서 작은 회사에서는 영주권이 없는 사람을 뽑지 못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미국에 건너올 때가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서 온 사람들은 영어를 익혀도 그 이전에 온 사람들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중학교 때 건너온 사람은 그래도 영어가 자연스럽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때 오면 언어에서 차이가 납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 갭을 줄이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외국어는 조기에 익혀야 한다는 정설이 맞습니다. 나이 먹어 배우는 외국어는 오랜 시간으로도 네이티브의 벽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나이 먹어 미국에 오신 1세대들은 제 아무리 한국에서 유능했던 사람들이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약되어 있죠.
회사에 취업하기도 힘들고 취업해도 승진하기가 어렵죠.
승진이 안되는 큰 이유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딸리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경력직이나 간부직으로 갈 수록 따지는 조건은 유창한 언어입니다.
요구 조건에 대놓고 그런 말을 하죠.
간부의 입장이 아무래도 부하 직원들을 통솔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미국에서 고급 교육을 받은 많은 유학생들이 고급 일자리를 위해서는 결국 한국으로 다시 유턴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아주 특별한 자기 만의 기술이나 경쟁력이 없다면, 같은 값으로 말 잘하는 미국인 대신에 말 못하는 외국인을 뽑고 승진시킬 이유가 없죠.
이민 2세대는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죠.
짧은 이민 역사를 고려해 볼 때 아직 이민 3세대가 생산활동에 등장할 때는 아닌 것 같고, 이제 이민 2세대들은 차차 미국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죠.
이민 2세대들은 영어가 되죠.
한국말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1.5세대, 그러니까 어려서 미국에 건너온 사람들은 한국말을 어느 정도라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2세대는 지역에 따라 환경에 따라 한국말을 아예 못하는 경우도 있죠.
어떻게 보면 이해가 안갈 수도 있죠.
부모가 한국인인데 어떻게 한국말을 잘 못할까?
그 의문점을 푸는 한 가지 예를 들께요.
유학생 가정에 아이가 자라납니다.
그 아이는 이제 3살입니다.
그 아이는 한국말을 할까요. 영어를 할까요.
놀랍게도 영어를 합니다.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고 한국말을 쓰지 않느냐. 그렇지가 않죠.
이유는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보면 알게 됩니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것은 부모와 어른들에게서가 아니더군요. 자기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사용하게되는 언어가 입에 붙더군요. 그리고 TV를 보기때문이기도 하고요.
집에서 아주 특별히 열심히 한국말을 가르치지 않으면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알아듣기는 어느 정도 알아듣는 경우가 있더라도 말하기는 매우 초보적이 되기도 하지요.
한국인 친구들이 많은 사회에서 자라나지 않는다면 영어가 그의 말이 되고 한국말은 외국어가 되죠.
미국 LA같은 곳은 교민 수가 백만이 넘는다고 하네요.
이런 곳에서는 영어 한 마디 못해도 거뜬히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에서 성장한 세대들은 비교적 한국어를 잘할 확률이 높겠죠.
그렇지만 교민 수가 적고 미국인 학교에서 교육받은 세대들은, 한국인 또래 친구가 적은 곳에서 자란 세대들은 한국말을 못할 가능성이 더 높죠.
그렇지만 말 못하는 이민 2세대들도 정서적으로는 많이 통합니다.
부모가 누구였나 하는 것은 말은 아니더라도 사고 방식을 많이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죠.
형, 아우하는 한국의 나이서열 문화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만나보시면 미국인이라는 생각보다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더 들거에요.
그리고 이네들은 방학같은 때 한국에 들르기도 하고 그러기에 한국 문화를 잘 알죠.
그리고 이런 것은 비단 우리 민족 뿐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온 모든 2세대들이 비슷한 경향을 보입니다.
중국인 2세대, 베트남 2세대, 멕시칸 2세대. 다들 순종 미국인들과는 사고 방식이나 매너에서 차이가 나죠. 중국인 2세도 멕시칸 2세도 오리지널 백인들보다는 오리지널 중국인, 오리지널 멕시칸의 정서를 보여줍니다.
개방적이고 개인적인 미국인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기네 조상들의 모습들도 많이 보여줍니다.
이 점은 선천적인 유전의 영향일 수도 있고 가정 환경과 교육 때문일 수도 있죠.
과연 무엇이 더 크게 영향을 줄까요?
이 문제의 답에 힌트를 줄 수 있는 경우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3살 때 입양되어 백인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을 한 명 만나보았습니다.
발음에서는 거의 코리언 특유의 엑센트를 발견하기 어렵더군요.
일반적으로 2세대들에게서는 그 민족 고유의 발음과 악센트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교포들이 쓰는 영어는 훨씬 알아먹기가 편합니다.
사고 방식은? 오리지널 백인과는 약간 다르죠. 한국인의 냄새가 조금이라도 느껴지죠.
불행히도 아주 짧은 시간 대화하고 그 이후 교류가 없었기에 자세히 알 수는 없었죠.
교민 사회는 다른 인종들과 활발히 교류하기보다 코리언타운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모양입니다. 언어가 가장 큰 이유겠고 사업하기에 넘기 힘든 문화나 정서의 차이 때문이겠죠.
머리가 굳어진 상태에서 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새로운 사고 방식을 몸에 익혀 본토인들과 스스럼없이 경쟁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죠.
아무튼 그렇기에 미국에 건너간 사람들이 막상 돈 벌 때는 한국인들을 더 찾게 되고
이렇기에 좁은 바닥에서 한국인들 서로에 대한 불신감도 상당한 편입니다.
돈을 같이 벌어서 같이 나누기 보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벌어내야 하는 형편이다 보니 그렇기도 하죠.
한국인들 잘 뭉칠 것 같나요?
어떤 면에서 맞는 말이고 어떤 면에서 틀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민족임을 자긍하는 한국인들.
정이 많고 끈끈하게 뭉치는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한국인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단결력이 매우 좋아야 할 듯 하죠.
그런데 개인적인 친분의 깊이를 공공의식보다 소중히 여기는 온정주의적 단결력은 집합의 부피가 커지면 분열을 부릅니다.
처음에 몇몇 소수가 뭉치면 서로의 사생활 일거수 일투족까지 다 알아내고야 말 정도로 귀찮을 정도로 끈끈하죠.
그런데 소수가 커져 다수가 되면 그 다수가 다같이 끈끈해 질 수가 없는 거죠.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다같이 끈끈해 질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 그 중에서 또 맘에 맞는 사람들끼리 소수를 이루어 자기네들끼리만 어울리게 되죠.
이렇기에 집단의 부피가 커지면 커질때마다 갈라지고 갈라지고
갈라지는 것까지는 뭐라 나쁘다 말 못하겠는데 서로를 배척하거나 헐뜯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문제가 되죠.
괌이나 하와이 같은 여행지에도 교민들의 수가 제법 됩니다.
거기 교민들은 주로 한국인 여행자들의 지출에서 소득을 얻습니다.
첨에 소수가 있었을 땐 서로 가족같았겠지만 규모가 커지고 수가 늘어나니 나중엔 패가 갈라지는 겁니다.
괌에서 한국인 여행가이드들끼리 서로 욕설하고 뒤에서 비난하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습니다.
한 여행가이드가 그러더군요.
교민들은 1만명 이내에서는 서로 잘 뭉치는데 1만명 넘어가면 어김없이 패가 갈라진다. 괌도 그렇고 하와이도 그렇고 어딜가나 그런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인 이권이죠.
한국인들의 상대가 한국인들에 머물다 보면 좁은 상권 바닥에서 갈등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다들 보다 대승적으로 또는 진취적으로 보면 갈등을 피할 수도 있죠.
그러니까 한국인만을 상대하는 시장에서 벗어나 다른 외국인들이나 미국인들의 영역으로 진출한다면 우리끼리 벌이는 출혈을 피할 수 있죠.
그런데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중국인들은 그것이 우리보다 잘 되는 것 같고요.
명문 주립대를 마치고 '피델리티'라는 미국 최고 금융 회사 중 하나에 취업하고 그 이후에 자기 사업을 꿈꾸는 한 2세대 청년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국말을 잘 못하고 그래서 영어로 이야기했는데 의사소통은 잘 되더군요.
한국인의 공통 정서가 있어서 그런 것 같네요. 발음도 알아듣기 편하고요.
그 친구는 지금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는데 바이어(사업가)들을 중간에서 서로 연결해 주는 일을 합니다.
그 친구는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을 좀 싫어합니다. Selfish하다. 이기적이다.
무슨 뜻이냐 하니 협상할 때 그네들은 말이 잘 안통한다네요.
'그네들은 근시안적이다. 바로 눈앞의 자기 이익에 너무 집착해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마인드가 부족하다.'
협상이라는 것은 서로가 얻어낼 것을 얻어내는 대신 버릴 것은 버릴 줄 알아야 이루어지죠. 근데 그게 잘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와 여러 인종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죠.
제가 미국인들한테 받은 인상을 얘기했죠.
제가 미국 백인들한테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 중의 하나는
그애들의 일처리 능력입니다.
저는 미국 애들이 자기 일을 함에 있어 확 두드러지게 잘 하는 모습보다 실수를 최소화하는 모습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막 화려하게 무언가를 멋지게 벌리고 그러기보다는
하나하나에서 오류를 없애고 실수가 없이 빈틈없이 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만 들으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잘 감이 안올 겁니다.
그들과 같이 무슨 일을 해보면 하나하나를 논리적, 합리적으로 판단하는데
그네들이 재치나 창의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은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을 수용하고 하나로 종합해 내는 데 매우 탁월합니다.
뭔가 스스로 착오나 편견이 있음을 다른 사람이 발견하면
절대 억지부리지 않고 금방금방 수용합니다.
팀프로젝트를 한다면 리더의 주도권다툼같은 것은 없습니다.
누가 의견을 제시하건 그것이 설득력 있으면 그것을 따릅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남겼죠.
흩어지지 않고 뭉치는 것은 강한 적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그렇지만 무엇을 위해 뭉치는 가 하는 질문은 중요합니다.
단지 살기 위해 뭉치는 것이라면 뭉치고 난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죠.
제가 미국 교포 사회에 속해 오래 살아본 것도 아니고
그러니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것은 단지 저만의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둡니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회에 잘 동화하지 못하고 따로 겉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은 있는데
그것은 교포 1세대들에게 주로 적용되는 것이죠.
미국에 건너 오면 영주권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죠.
오래 살다 보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됩니다. 그 기간은 어떤 직업을 가지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보통 5년 잡죠.
영주권을 얻게 되면 비자없이 살 수 있기에 신분에 제약이 사라집니다.
영주권이 없으면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피할 수 없겠죠.
회사에서 영주권이 없는 사람을 뽑으려면 부담을 지기도 하고 그래서 작은 회사에서는 영주권이 없는 사람을 뽑지 못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미국에 건너올 때가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서 온 사람들은 영어를 익혀도 그 이전에 온 사람들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중학교 때 건너온 사람은 그래도 영어가 자연스럽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때 오면 언어에서 차이가 납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 갭을 줄이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외국어는 조기에 익혀야 한다는 정설이 맞습니다. 나이 먹어 배우는 외국어는 오랜 시간으로도 네이티브의 벽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나이 먹어 미국에 오신 1세대들은 제 아무리 한국에서 유능했던 사람들이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약되어 있죠.
회사에 취업하기도 힘들고 취업해도 승진하기가 어렵죠.
승진이 안되는 큰 이유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딸리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경력직이나 간부직으로 갈 수록 따지는 조건은 유창한 언어입니다.
요구 조건에 대놓고 그런 말을 하죠.
간부의 입장이 아무래도 부하 직원들을 통솔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미국에서 고급 교육을 받은 많은 유학생들이 고급 일자리를 위해서는 결국 한국으로 다시 유턴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아주 특별한 자기 만의 기술이나 경쟁력이 없다면, 같은 값으로 말 잘하는 미국인 대신에 말 못하는 외국인을 뽑고 승진시킬 이유가 없죠.
이민 2세대는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죠.
짧은 이민 역사를 고려해 볼 때 아직 이민 3세대가 생산활동에 등장할 때는 아닌 것 같고, 이제 이민 2세대들은 차차 미국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죠.
이민 2세대들은 영어가 되죠.
한국말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1.5세대, 그러니까 어려서 미국에 건너온 사람들은 한국말을 어느 정도라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2세대는 지역에 따라 환경에 따라 한국말을 아예 못하는 경우도 있죠.
어떻게 보면 이해가 안갈 수도 있죠.
부모가 한국인인데 어떻게 한국말을 잘 못할까?
그 의문점을 푸는 한 가지 예를 들께요.
유학생 가정에 아이가 자라납니다.
그 아이는 이제 3살입니다.
그 아이는 한국말을 할까요. 영어를 할까요.
놀랍게도 영어를 합니다.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고 한국말을 쓰지 않느냐. 그렇지가 않죠.
이유는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보면 알게 됩니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것은 부모와 어른들에게서가 아니더군요. 자기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사용하게되는 언어가 입에 붙더군요. 그리고 TV를 보기때문이기도 하고요.
집에서 아주 특별히 열심히 한국말을 가르치지 않으면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알아듣기는 어느 정도 알아듣는 경우가 있더라도 말하기는 매우 초보적이 되기도 하지요.
한국인 친구들이 많은 사회에서 자라나지 않는다면 영어가 그의 말이 되고 한국말은 외국어가 되죠.
미국 LA같은 곳은 교민 수가 백만이 넘는다고 하네요.
이런 곳에서는 영어 한 마디 못해도 거뜬히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에서 성장한 세대들은 비교적 한국어를 잘할 확률이 높겠죠.
그렇지만 교민 수가 적고 미국인 학교에서 교육받은 세대들은, 한국인 또래 친구가 적은 곳에서 자란 세대들은 한국말을 못할 가능성이 더 높죠.
그렇지만 말 못하는 이민 2세대들도 정서적으로는 많이 통합니다.
부모가 누구였나 하는 것은 말은 아니더라도 사고 방식을 많이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죠.
형, 아우하는 한국의 나이서열 문화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만나보시면 미국인이라는 생각보다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더 들거에요.
그리고 이네들은 방학같은 때 한국에 들르기도 하고 그러기에 한국 문화를 잘 알죠.
그리고 이런 것은 비단 우리 민족 뿐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온 모든 2세대들이 비슷한 경향을 보입니다.
중국인 2세대, 베트남 2세대, 멕시칸 2세대. 다들 순종 미국인들과는 사고 방식이나 매너에서 차이가 나죠. 중국인 2세도 멕시칸 2세도 오리지널 백인들보다는 오리지널 중국인, 오리지널 멕시칸의 정서를 보여줍니다.
개방적이고 개인적인 미국인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기네 조상들의 모습들도 많이 보여줍니다.
이 점은 선천적인 유전의 영향일 수도 있고 가정 환경과 교육 때문일 수도 있죠.
과연 무엇이 더 크게 영향을 줄까요?
이 문제의 답에 힌트를 줄 수 있는 경우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3살 때 입양되어 백인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을 한 명 만나보았습니다.
발음에서는 거의 코리언 특유의 엑센트를 발견하기 어렵더군요.
일반적으로 2세대들에게서는 그 민족 고유의 발음과 악센트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교포들이 쓰는 영어는 훨씬 알아먹기가 편합니다.
사고 방식은? 오리지널 백인과는 약간 다르죠. 한국인의 냄새가 조금이라도 느껴지죠.
불행히도 아주 짧은 시간 대화하고 그 이후 교류가 없었기에 자세히 알 수는 없었죠.
교민 사회는 다른 인종들과 활발히 교류하기보다 코리언타운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모양입니다. 언어가 가장 큰 이유겠고 사업하기에 넘기 힘든 문화나 정서의 차이 때문이겠죠.
머리가 굳어진 상태에서 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새로운 사고 방식을 몸에 익혀 본토인들과 스스럼없이 경쟁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죠.
아무튼 그렇기에 미국에 건너간 사람들이 막상 돈 벌 때는 한국인들을 더 찾게 되고
이렇기에 좁은 바닥에서 한국인들 서로에 대한 불신감도 상당한 편입니다.
돈을 같이 벌어서 같이 나누기 보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벌어내야 하는 형편이다 보니 그렇기도 하죠.
한국인들 잘 뭉칠 것 같나요?
어떤 면에서 맞는 말이고 어떤 면에서 틀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민족임을 자긍하는 한국인들.
정이 많고 끈끈하게 뭉치는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한국인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단결력이 매우 좋아야 할 듯 하죠.
그런데 개인적인 친분의 깊이를 공공의식보다 소중히 여기는 온정주의적 단결력은 집합의 부피가 커지면 분열을 부릅니다.
처음에 몇몇 소수가 뭉치면 서로의 사생활 일거수 일투족까지 다 알아내고야 말 정도로 귀찮을 정도로 끈끈하죠.
그런데 소수가 커져 다수가 되면 그 다수가 다같이 끈끈해 질 수가 없는 거죠.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다같이 끈끈해 질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 그 중에서 또 맘에 맞는 사람들끼리 소수를 이루어 자기네들끼리만 어울리게 되죠.
이렇기에 집단의 부피가 커지면 커질때마다 갈라지고 갈라지고
갈라지는 것까지는 뭐라 나쁘다 말 못하겠는데 서로를 배척하거나 헐뜯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문제가 되죠.
괌이나 하와이 같은 여행지에도 교민들의 수가 제법 됩니다.
거기 교민들은 주로 한국인 여행자들의 지출에서 소득을 얻습니다.
첨에 소수가 있었을 땐 서로 가족같았겠지만 규모가 커지고 수가 늘어나니 나중엔 패가 갈라지는 겁니다.
괌에서 한국인 여행가이드들끼리 서로 욕설하고 뒤에서 비난하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습니다.
한 여행가이드가 그러더군요.
교민들은 1만명 이내에서는 서로 잘 뭉치는데 1만명 넘어가면 어김없이 패가 갈라진다. 괌도 그렇고 하와이도 그렇고 어딜가나 그런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인 이권이죠.
한국인들의 상대가 한국인들에 머물다 보면 좁은 상권 바닥에서 갈등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다들 보다 대승적으로 또는 진취적으로 보면 갈등을 피할 수도 있죠.
그러니까 한국인만을 상대하는 시장에서 벗어나 다른 외국인들이나 미국인들의 영역으로 진출한다면 우리끼리 벌이는 출혈을 피할 수 있죠.
그런데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중국인들은 그것이 우리보다 잘 되는 것 같고요.
명문 주립대를 마치고 '피델리티'라는 미국 최고 금융 회사 중 하나에 취업하고 그 이후에 자기 사업을 꿈꾸는 한 2세대 청년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국말을 잘 못하고 그래서 영어로 이야기했는데 의사소통은 잘 되더군요.
한국인의 공통 정서가 있어서 그런 것 같네요. 발음도 알아듣기 편하고요.
그 친구는 지금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는데 바이어(사업가)들을 중간에서 서로 연결해 주는 일을 합니다.
그 친구는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을 좀 싫어합니다. Selfish하다. 이기적이다.
무슨 뜻이냐 하니 협상할 때 그네들은 말이 잘 안통한다네요.
'그네들은 근시안적이다. 바로 눈앞의 자기 이익에 너무 집착해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마인드가 부족하다.'
협상이라는 것은 서로가 얻어낼 것을 얻어내는 대신 버릴 것은 버릴 줄 알아야 이루어지죠. 근데 그게 잘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와 여러 인종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죠.
제가 미국인들한테 받은 인상을 얘기했죠.
제가 미국 백인들한테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 중의 하나는
그애들의 일처리 능력입니다.
저는 미국 애들이 자기 일을 함에 있어 확 두드러지게 잘 하는 모습보다 실수를 최소화하는 모습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막 화려하게 무언가를 멋지게 벌리고 그러기보다는
하나하나에서 오류를 없애고 실수가 없이 빈틈없이 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만 들으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잘 감이 안올 겁니다.
그들과 같이 무슨 일을 해보면 하나하나를 논리적, 합리적으로 판단하는데
그네들이 재치나 창의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은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을 수용하고 하나로 종합해 내는 데 매우 탁월합니다.
뭔가 스스로 착오나 편견이 있음을 다른 사람이 발견하면
절대 억지부리지 않고 금방금방 수용합니다.
팀프로젝트를 한다면 리더의 주도권다툼같은 것은 없습니다.
누가 의견을 제시하건 그것이 설득력 있으면 그것을 따릅니다.
누가 말하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그와 대조적으로 한국에서는 무엇을 말하느냐 못지 않게 누가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평소에 그룹에 잘 참여하지 않고 빈둥거리던 사람의 말일지라도, 발언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발언의 의미가 묻히지도 않습니다.
제가 짧은 영어로 더듬거리며 이상한 질문을 하더라도
바쁜데 쓸데없는 소리하네 하며 픽웃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검토해서 답을 줍니다.
또한 역할분담을 잘합니다. 역할분담이라는 것이 스스로의 이익과 연관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위해 모였다면 어디까지나 거기에 충실합니다.
자기가 좀 손해가 될 수 있을지라도 그런 것을 주장하지는 않죠.
여기에는 이런 마인드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에 가서는 모두의 이익이 되는 일이다. 지금은 내가 좀 이득이 없는 것 같을지라도 언젠가는 나에게도 이득이 돌아온다.'
이런 생각에서 역할 설정을 대승적인 차원에서 잘 나누고 자기 역할을 받아들입니다.
'언제 영광을 누리느냐의 차이일 뿐 팀의 승리는 나에게도 결국 영광으로 돌아온다.'
얘네들이 팀웍을 강조하면서 쓰는 경구 중의 하나입니다.
미국애들이 선호하는 일꾼은 이런 스타일입니다.
혼자서 튀는 유능한 사람은 조직에서 선호받지 못합니다.
좀 무능해도 조직과 잘 융화할 수 있는 사람이 보다 선호됩니다.
개인플레이보다는 팀플레이에 우선하는 사람을 보다 평가합니다.
이건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일 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른바 개인주의의 나라인 미국에서 이러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교포 친구의 말에 따르자면
많은 NBA감독은 흑인 선수보다 백인 선수들을 선호할 수 있답니다.
그 이유는 어떤 흑인들은 개인플레이는 잘 하더라도 팀 승리에 도움이 안되는 반면 백인 선수들은 팀플레이를 잘 한다는 겁니다.
그 친구가 얼마나 농구를 잘 이해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백인들이 팀플레이에 강하다는 시각에는 저도 매우 공감합니다.
농구 선수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일상 모습에서 자주 보았습니다.
상호협조가 잘 되죠.
그리고 이 상호 협동과 협조는 상호 신뢰라는 바탕 위에 있습니다.
미국은 이른바 '신뢰 사회'죠.
상대방이 나와 같은 이해관계가 아닐 지라도, 같은 편이 아니더라도,
협상이나 협조에 있어 상대방이 룰을 엄수하리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 신뢰를 깨는 사람은 엄격한 비난을 받게 되죠.
미국의 경제 사범이나 탈세범에 대한 강한 처벌을 아실 겁니다.
몇년전 어느 미국회사의 회계 부정 사건 때 최고 책임자는 징역 20년을 받았습니다.
룰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가차없죠.
미국은 일시불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보다 할부로 구매하는 사람의 크레딧이 더 높아집니다. 일시불로 살 수 있을 지라도 크레딧을 위해 할부로 구매합니다.
할부로 구입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지불이고
오랜 시간에 걸친 지불은 그만큼 그 사람의 경제적 지불 능력의 꾸준함을 보여주고
그렇기에 보다 신뢰감이 든다는 얘기죠.
또 얼마 전에 몇몇 교포 학생들의 고등학교 제적 사건을 기억하실겁니다.
성적 조작이 드러나자 가해진 처벌은 해당과목 낙제나 유급이 아니라 제일 강한 조치인 퇴교였습니다.
듀크대 MBA과정에서 시험 부정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도 전원 제적 처리를 받았죠.
그 과목 낙제가 아닌.
같은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그렇게까지 심하게 처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호 협조 사회는 상호 신뢰를 바탕하는 것이기에 신뢰를 깨는 행동에 대한 제재는 엄중합니다.
앞서서 제가 한국인들은 잘 뭉치는 가 물었었죠. 어떤 면에서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한국인은 '단결심'이 강합니다.
'우리는 다 같은 하나'라는 생각에 잘 뭉칩니다.
하지만 '협동심'은 강하지 않습니다.
하나로 뭉칠지라도 그 안에서 서로가 맡아야 할 역할에 충실하지 못합니다.
협동이라는 것은 감정적인 정서적인 일체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다 합리성 위에 기반합니다.
조직의 이익을 쫓다보면 하나하나에게 돌아가는 역할은 불만스러울 수도 있죠.
과정에서 불만을 가질 수도 있죠.
하지만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것이 팀의 승리를 위한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 잘 협동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팀의 승리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도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을 때 기꺼이 그 역할을 감수하고
당장은 희생하는 입장일지라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영웅만들기를 잘하는 나라라고들 하죠.
어떻게 보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기 위해 만드는 선전을 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 이상으로
'팀의 이익은 언젠가는 반드시 모두의 이익으로 돌아가리라'는 정신을 지키기 위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조국을 위해 죽은 사람이라면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그 시체라도 반드시 찾아낸다. 너희를 결코 잊히게 놔두지 않겠다는.
그래서 블랙호크다운에서는 한 명의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수십명이 더 죽고, 라이언 일병을 하나를 위해 중대 병력이 거의 전멸하게 되는 거죠.
그런 상징적인 정신이 깊이 뿌리내린 문화입니다.
근데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국가를 신뢰합니까? 정파를 떠나 정부를 신뢰합니까?
내가 속한 직장을 신뢰합니까? 사회를 신뢰합니까?
미국은 어떻습니까.
대통령 선거가 벌어질 때는 격렬하게 싸워도 결과가 나오면 하나의 미국으로 뭉칩니다.
정파의 이해관계가 달라도 미국의 결정이 내려지면 그를 존중합니다.
대통령이 의회 연설을 하면 기립박수가 쏟아집니다.
결국 하나의 미국이라는 마음에서죠.
내가 속한 그룹, 내가 속한 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거죠.
팀의 승리가 나의 이익보다 앞선다는 마음이 바탕이 되는 겁니다.
전 우리도 보다 협동심이 강한 나라,
협조를 잘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한 나라, 강한 민족치고 협동심, 협조가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신뢰도가 낮은 사회는 없습니다.
하나의 혈족이라는 정서에 근거한 '단결심'이 아니라
구성원끼리의 상호 신뢰라는 합리성에 근거한 '협동심'이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 말은 조금 바뀌어야 합니다.
단순히 뭉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신뢰하고 협조를 잘 해야 합니다'로요.
또한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겠죠.
개인적인 친분이 공공의식을 우선할 때
분파가 생기는 겁니다.
혈연, 지연, 학연...
미국 교포 사회와 미국 사회를 비교해 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해 나름대로 주제넘게 해부도 해보았습니다.
평소에 그룹에 잘 참여하지 않고 빈둥거리던 사람의 말일지라도, 발언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발언의 의미가 묻히지도 않습니다.
제가 짧은 영어로 더듬거리며 이상한 질문을 하더라도
바쁜데 쓸데없는 소리하네 하며 픽웃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검토해서 답을 줍니다.
또한 역할분담을 잘합니다. 역할분담이라는 것이 스스로의 이익과 연관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위해 모였다면 어디까지나 거기에 충실합니다.
자기가 좀 손해가 될 수 있을지라도 그런 것을 주장하지는 않죠.
여기에는 이런 마인드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에 가서는 모두의 이익이 되는 일이다. 지금은 내가 좀 이득이 없는 것 같을지라도 언젠가는 나에게도 이득이 돌아온다.'
이런 생각에서 역할 설정을 대승적인 차원에서 잘 나누고 자기 역할을 받아들입니다.
'언제 영광을 누리느냐의 차이일 뿐 팀의 승리는 나에게도 결국 영광으로 돌아온다.'
얘네들이 팀웍을 강조하면서 쓰는 경구 중의 하나입니다.
미국애들이 선호하는 일꾼은 이런 스타일입니다.
혼자서 튀는 유능한 사람은 조직에서 선호받지 못합니다.
좀 무능해도 조직과 잘 융화할 수 있는 사람이 보다 선호됩니다.
개인플레이보다는 팀플레이에 우선하는 사람을 보다 평가합니다.
이건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일 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른바 개인주의의 나라인 미국에서 이러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교포 친구의 말에 따르자면
많은 NBA감독은 흑인 선수보다 백인 선수들을 선호할 수 있답니다.
그 이유는 어떤 흑인들은 개인플레이는 잘 하더라도 팀 승리에 도움이 안되는 반면 백인 선수들은 팀플레이를 잘 한다는 겁니다.
그 친구가 얼마나 농구를 잘 이해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백인들이 팀플레이에 강하다는 시각에는 저도 매우 공감합니다.
농구 선수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일상 모습에서 자주 보았습니다.
상호협조가 잘 되죠.
그리고 이 상호 협동과 협조는 상호 신뢰라는 바탕 위에 있습니다.
미국은 이른바 '신뢰 사회'죠.
상대방이 나와 같은 이해관계가 아닐 지라도, 같은 편이 아니더라도,
협상이나 협조에 있어 상대방이 룰을 엄수하리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 신뢰를 깨는 사람은 엄격한 비난을 받게 되죠.
미국의 경제 사범이나 탈세범에 대한 강한 처벌을 아실 겁니다.
몇년전 어느 미국회사의 회계 부정 사건 때 최고 책임자는 징역 20년을 받았습니다.
룰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가차없죠.
미국은 일시불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보다 할부로 구매하는 사람의 크레딧이 더 높아집니다. 일시불로 살 수 있을 지라도 크레딧을 위해 할부로 구매합니다.
할부로 구입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지불이고
오랜 시간에 걸친 지불은 그만큼 그 사람의 경제적 지불 능력의 꾸준함을 보여주고
그렇기에 보다 신뢰감이 든다는 얘기죠.
또 얼마 전에 몇몇 교포 학생들의 고등학교 제적 사건을 기억하실겁니다.
성적 조작이 드러나자 가해진 처벌은 해당과목 낙제나 유급이 아니라 제일 강한 조치인 퇴교였습니다.
듀크대 MBA과정에서 시험 부정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도 전원 제적 처리를 받았죠.
그 과목 낙제가 아닌.
같은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그렇게까지 심하게 처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호 협조 사회는 상호 신뢰를 바탕하는 것이기에 신뢰를 깨는 행동에 대한 제재는 엄중합니다.
앞서서 제가 한국인들은 잘 뭉치는 가 물었었죠. 어떤 면에서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한국인은 '단결심'이 강합니다.
'우리는 다 같은 하나'라는 생각에 잘 뭉칩니다.
하지만 '협동심'은 강하지 않습니다.
하나로 뭉칠지라도 그 안에서 서로가 맡아야 할 역할에 충실하지 못합니다.
협동이라는 것은 감정적인 정서적인 일체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다 합리성 위에 기반합니다.
조직의 이익을 쫓다보면 하나하나에게 돌아가는 역할은 불만스러울 수도 있죠.
과정에서 불만을 가질 수도 있죠.
하지만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것이 팀의 승리를 위한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 잘 협동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팀의 승리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도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을 때 기꺼이 그 역할을 감수하고
당장은 희생하는 입장일지라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영웅만들기를 잘하는 나라라고들 하죠.
어떻게 보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기 위해 만드는 선전을 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 이상으로
'팀의 이익은 언젠가는 반드시 모두의 이익으로 돌아가리라'는 정신을 지키기 위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조국을 위해 죽은 사람이라면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그 시체라도 반드시 찾아낸다. 너희를 결코 잊히게 놔두지 않겠다는.
그래서 블랙호크다운에서는 한 명의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수십명이 더 죽고, 라이언 일병을 하나를 위해 중대 병력이 거의 전멸하게 되는 거죠.
그런 상징적인 정신이 깊이 뿌리내린 문화입니다.
근데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국가를 신뢰합니까? 정파를 떠나 정부를 신뢰합니까?
내가 속한 직장을 신뢰합니까? 사회를 신뢰합니까?
미국은 어떻습니까.
대통령 선거가 벌어질 때는 격렬하게 싸워도 결과가 나오면 하나의 미국으로 뭉칩니다.
정파의 이해관계가 달라도 미국의 결정이 내려지면 그를 존중합니다.
대통령이 의회 연설을 하면 기립박수가 쏟아집니다.
결국 하나의 미국이라는 마음에서죠.
내가 속한 그룹, 내가 속한 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거죠.
팀의 승리가 나의 이익보다 앞선다는 마음이 바탕이 되는 겁니다.
전 우리도 보다 협동심이 강한 나라,
협조를 잘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한 나라, 강한 민족치고 협동심, 협조가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신뢰도가 낮은 사회는 없습니다.
하나의 혈족이라는 정서에 근거한 '단결심'이 아니라
구성원끼리의 상호 신뢰라는 합리성에 근거한 '협동심'이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 말은 조금 바뀌어야 합니다.
단순히 뭉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신뢰하고 협조를 잘 해야 합니다'로요.
또한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겠죠.
개인적인 친분이 공공의식을 우선할 때
분파가 생기는 겁니다.
혈연, 지연, 학연...
미국 교포 사회와 미국 사회를 비교해 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해 나름대로 주제넘게 해부도 해보았습니다.
p.s. 2006년 여름에 남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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