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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보는 한국

한국인은 왜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할까?





미국에서 강의를 들었을 때 가장 이색적이었던 것 중의 하나는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조용히 손을 들면 교수가 손을 든 순서대로 질문할 기회를 주고 학생들은 질문을 한다. 그 질문은 교수가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이나 오해할 수 있는 내용에 관한 것도 있겠다. 그렇지만 매우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 못해서 되묻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교수는 그에 대해서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고 친절하게 학생의 이해를 도우려고 노력한다. 이는 내게 매우 인상적인 경험 중의 하나였다.

그 이유는 첫째로 내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한국에서는 쉬운 질문 따위는 학생들이 잘 안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주위 사람들 보기 챙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것도 모르나?'하는 조소가 강의실에 흐를 것 같은 불안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고 교수가 안 좋은 인상을 가질까봐 염려하는 점도 있다.

내가 예전에 회계학 시간에 교수님께 질문을 연이어 한 적이 있었다. 그 질문은 수업의 대강의 흐름과 잘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진도에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궁리한 끝에 얻은 창의적인 질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어느 선배 형이 내게 와서 충고를 남겼다. '공부 안하고 하는 그런 무성의한 질문은 남기지 마라. 질문도 수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공부 안한 티나는 그런 질문을 듣고 교수님이 어떻게 생각했겠냐. 수업 시간의 실력있는 동료들마저 짜증이 났을 지 모르는 일이다.' 
그 얘기를 듣고 얼굴이 확 달아 올랐었다. 아. 질문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구나. 미리 공부하고 준비한 후에도 미처 모르는 것에 대해서만 질문하는 것이구나. 형편없는 질문을 하면 사람들이 나를 업수이 여기는 것이구나. 
그 이후로는 감히 수업 시간에 손을 들 수 없었다. 질문을 통해 내 수준이 남들에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말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그러한 개념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미국 대학 강의실에서는 심지어 잘못 들었으니 다시 반복해 달라는 요청도 심심치 않게 이어지는 것이었다. 질문은 듣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에 대해 하는 것이지 자기가 공부한 실력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어떤 질문은 듣고 있자면 저 학생은 창피한 줄 모르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을 계속 헷갈려 하면서 질문을 던지는 그 예쁜 여학생. 수업의 다른 학생들도 설명을 거들기까지 하는데, 한국에서라면 이런 일이 벌어질까 싶었다. 아마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을 그만두었을 것같다. 하지만 미국 학생들은 그러한 부끄러움이 없다. 이 점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왜 미국 학생들은 체면 구길 수 있는 질문도 서슴없이 할까? 그것은 아마도 그것이 자기의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부끄러워서 모른 채 넘어가는 것보다 부끄럽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자기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수업에 참여하는 기본 목표에 부합하는 행위다. 수업에 참여하는 이유는 아는 척 하기 위함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알고 넘어가려 하기 위함이니까. 

그런데 왜 한국 사회에서는 질문하는 태도에 대해 종종 비웃음을 품는 이들이 있을까? 남들 보기 부끄러워 질문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을까? 그것은 남이 틀리는 것을 보고 비웃는 속좁은 이들이 많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남의 무지에 대해 관용하는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질문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보다 부끄러운 것은 남의 시선 때문에 질문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자세다.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남들이 다 아는 수준에 발맞추지 못하는 것이 비웃음을 살 일은 아니다. 진짜 안타까운 것은 질문이 두려워 잘 모르는 것마저도 아는 척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질문하기가 두려운 곳에서는 제대로 알고 넘어가기가 어렵다. 그저 남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수준에 맞추기에 급급할 뿐이다.

모르는 것을 묻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라면 남들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기를 꺼릴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자신이 모르거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잘 모르는 것을 묻는 다는 것이 과연 수치스러운 일일까? 아니면 남의 시선이 두려워 잘 모르는 것도 대강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