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립서비스를 잘한다는 말을 한 번 쯤 들어본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유명한 미국인의 립서비스 문화가 나온 문화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제 미국인 친구 D가 있습니다. 이제 3년을 넘게 알게된 그. 미국 명절 때마다 가족 모임(그는 기혼자입니다)에 초대해준 그로 인해 미국 가정 문화에 대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정도로 어느 정도나마 어설프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알게된 후로부터 3년이 넘어가도 제 영어 수준은 그다지 많이 늘은 것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서투르고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을 알게 되었고 저는 그들의 한국 발음을 잡아주고 한국어 표현을 고쳐줍니다. 그리고 그 대신 그들은 제 영어에서 이상한 발음과 어색한 표현을 고쳐 줍니다. 그러는 가운데 저는 몇몇 아주 기본적인 단어의 발음, 기본적인 표현마저도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지 전혀 모르고서 계속 습관적으로 사용했던 것들입니다.
이상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몇년 동안 그 부분에 대해 지적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동안 나의 친구들은 그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들은 내 발음을 이해했던 것일까?'
D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습니다. 나의 영어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왜 그동안 내 영어에 대해서 한 번도 고쳐주려고 하지 않았는 지 이유가 궁금하다고 물었습니다.
사실 약간은 서운한 감정도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때 그때 제 실수를 바로잡아주었었다면 지금 나의 영어는 보다 완벽해지지 않았을까 가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제게 돈을 받고 일하는 선생님이 아니고 그럴 의무가 없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역시 개인주의의 나라라서 그런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D의 답변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남의 실수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실례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부탁이 없었기에 그는 저의 부족한 표현에 대해 먼저 나서서 바로 잡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놀랬습니다. 그럼 미국에서는 친구 사이에 서로 충고나 지적을 하지 않느냐 물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불륜에 빠졌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습니다.
정말 친한 친구라면 한번 충고를 던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그럼 잘못에 대해 지적해 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일까요? D는 그러한 지적이나 충고는 가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러는 것은 예의없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왜 미국인들은 긍정적인 표현만을 사용하고 서로에게 칭찬이나 격려만을 하는 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실수에 가차없고 비판에 서슴없던 태도가 그들 눈에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식은 땀이 났습니다.
사실 오늘만 해도 전 야외 BBQ 파티를 주관한 미국인에게 그가 이메일로 제공한 맵이 좀 틀렸다는, 그래서 길 찾기가 어려웠다는 말을 해버렸습니다. 비판하자고 한 말이 아니었지만 말하자마자 실수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말고 다른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길을 헤맸던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말입니다. 파티의 주관자는 저의 소소한 불평을 듣고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타인의 실수나 단점을 직접 지적하지 않는 미국 문화는 저 말고 다른 외국인의 눈에도 신기하게 보이나 봅니다. 미국에서 미국 여자와 결혼해 6년을 넘게 살고 있는 어느 불가리아 남자가 말하고 체코 남자 등도 동의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앵글로 색슨 문화권이 말을 이리저리 빙빙 돌려서 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편인데 미국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다른 면에서 보다, 적어도 남에 대해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인들은 표현을 삼가는 편입니다. 남에 대한 지적은 주로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할 때 이루어집니다. 지적이 나왔다면 그 상황은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를 따질 때입니다. 개인적인 호불호나 가치 기준에서 타인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사실상 없습니다.
한국은 이와는 다른 분위기임에 틀림없습니다. 타인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관대하게 용인하는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것'이라며 좋은 친구라면 듣기 싫은 말도 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 중에 무엇이 더 낫다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작은 매너의 차이가 전체 사회 문화의 배경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요?
한국은 사석에서 남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 문화인만큼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보다 예민해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쓰디쓴 충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저는 보다 조심할 수 밖에 없고 다른 이들의 비판이 두려워서 제 행동이나 생각에 있어서 어느 정도 자유로움을 포기해야 합니다.
미국은 사석에서 남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면전에 대고 말하는 것을 어그레시브(무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겉으로나마 주위 사람들의 일에 대해 무관심해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이러쿵 저러쿵 기대하지 않았던 잔소리를 들을 일은 없습니다. 대신 적극적으로 충고해 주거나 부탁하지 않아도 미리 도움을 주는 경우도 역시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상황을 잘 알아두지 않으면 주위의 무관심 속에 잘 몰라서 낭패를 볼 경우가 생깁니다.
아낌없는 비판을 하면서 상호 협조하는 한국인의 성향, 서로 존중하면서 스스로 자립하는 미국인의 성향. 이 것이 현재 두 나라 사람들 간에서 제가 가장 크게 느끼는 차이점 중의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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