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미국에 머무르다 한국에 들어온 지 좀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되찾은 고국의 일상 속에서 몇년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단면들을 새로이 깨닫게 되는 점들이 많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맺는 방식입니다.
미국의 경우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은 맨투맨입니다.
어느 모임에 가거나 그 모임에 속하게 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모임에 속한 사람들과 알게되는 것은 그 사람과 인사를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될 때입니다. 같은 모임에 있을 지라도 인사를 주고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둘은 어디까지나 모르는 사이로 규정됩니다.
그렇기에 미국인들을 만날 때 같은 장소, 같은 모임에서 있었다고 해서, 그리고 그 가운데서 얼굴을 기억한다고 해서 그 사람과 관계를 텄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같은 모임, 같은 장소 안에 있었는데도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면 상대방은 '아, 얘가 나랑 아는 척 하지 않으려는 구나. 저 사람은 남남처럼 지내길 바라는 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면이 있기 서양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성향을 보입니다. 그것이 상대에게 예의로 받아들여집니다. 관심이 없고 귀찮아도 앞으로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 말을 걸 필요가 있습니다. 말을 걸지 않았다면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서로 만나게 된 사람들의 관계 설정은 둘 사이의 대화 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것들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은 그루핑(Grouping)입니다.
어느 모임에 가거나 그 모임에 속하게 되면 마치 학생이 학교에 입학해서 뱃지를 달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 모임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서로가 서로를 조직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게 되었기에 더 이상 개인적으로 일대일로 따로 말을 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 만났다. 이 모임 안에서 더 이상 상대에 대해 알 필요는 없다. 우리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이 자리에 다같이 모였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한국에서 상대를 개인적으로 알려고 말을 거는 것은 모임 안에서 알게 된 사람에 대한 정보 확보로 여기기 보다는 불필요한 사적인 공간 침해로 보는 것일까요?
이러므로 모임 안에서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은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인 형식입니다.
상대방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어떤 위치인가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지 않고 자연스러운 기회를 엿보는 스타일입니다. 서로의 자리와 입장이 명확해 지면, 다른 말로 조직 안의 질서 아래서 각자 위치를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 관계 형성이 더 잘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각자 일대일로 알아간다기 보다는 조직 안에서 한 뭉텅이로 조금씩 알아간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자기가 알게된 개인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하기 보다는 조직에서의 평판도에 좌우됩니다. 조직에서 성실하다고 하면 그것이 성실한 것입니다.
결국 일대일의 만남이 아닌 여러 사람 속에서의 자기 위치 찾기라 하겠습니다. 개개인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일원으로 만나는 개념이 강합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조직문화와 서열이 강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는 조직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관계 맺음은 한 사람을 만나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기본적으로 관계설정이 위계 질서 하에서의 자리 파악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간의 예의는 서로가 정하는 것이라기 보다 주위와의 조화가 중심입니다. 싫은 사람이라도 싫다고 피하면 안되겠죠.
지금까지의 정리를 발전시키면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많은 문화적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관계 맺음이 개개인의 이해를 찾기 보다는 조직 안에서 조직의 질서에 따르는 것이기에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구성원이 기존의 조직 안에 어울리고 적응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됩니다.
하나하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기 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을 쉽게 걸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평판을 조금씩 알리면서, 그리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되면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조직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형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이 제각각 사람을 알아가기 보다 조직 속에서 자리를 찾아가기 때문에 눈치를 심하게 봐야 합니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도 조직의 논리에 동화되어야 합니다.
집단의 의견에 자신의 의견을 동조하는 현상이 강합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조직의 색깔에 맞추는 것이 보다 중요하니까요. 사람은 한 개인으로 알기 보다 조직 안에서의 한 구성원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남자보다도 여자 사이에서 특히 더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집단 주의가 약하고 개인 주의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달리 여자들은 자기 주위 사람들의 의견에 더 예민합니다.
이는 공감대를 찾는 것을 중요시 하는 여성들의 심리적 특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랜만에 되찾은 고국의 일상 속에서 몇년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단면들을 새로이 깨닫게 되는 점들이 많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맺는 방식입니다.
미국의 경우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은 맨투맨입니다.
어느 모임에 가거나 그 모임에 속하게 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모임에 속한 사람들과 알게되는 것은 그 사람과 인사를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될 때입니다. 같은 모임에 있을 지라도 인사를 주고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둘은 어디까지나 모르는 사이로 규정됩니다.
그렇기에 미국인들을 만날 때 같은 장소, 같은 모임에서 있었다고 해서, 그리고 그 가운데서 얼굴을 기억한다고 해서 그 사람과 관계를 텄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같은 모임, 같은 장소 안에 있었는데도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면 상대방은 '아, 얘가 나랑 아는 척 하지 않으려는 구나. 저 사람은 남남처럼 지내길 바라는 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면이 있기 서양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성향을 보입니다. 그것이 상대에게 예의로 받아들여집니다. 관심이 없고 귀찮아도 앞으로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 말을 걸 필요가 있습니다. 말을 걸지 않았다면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서로 만나게 된 사람들의 관계 설정은 둘 사이의 대화 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것들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은 그루핑(Grouping)입니다.
어느 모임에 가거나 그 모임에 속하게 되면 마치 학생이 학교에 입학해서 뱃지를 달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 모임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서로가 서로를 조직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게 되었기에 더 이상 개인적으로 일대일로 따로 말을 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 만났다. 이 모임 안에서 더 이상 상대에 대해 알 필요는 없다. 우리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이 자리에 다같이 모였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한국에서 상대를 개인적으로 알려고 말을 거는 것은 모임 안에서 알게 된 사람에 대한 정보 확보로 여기기 보다는 불필요한 사적인 공간 침해로 보는 것일까요?
이러므로 모임 안에서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은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인 형식입니다.
상대방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어떤 위치인가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지 않고 자연스러운 기회를 엿보는 스타일입니다. 서로의 자리와 입장이 명확해 지면, 다른 말로 조직 안의 질서 아래서 각자 위치를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 관계 형성이 더 잘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각자 일대일로 알아간다기 보다는 조직 안에서 한 뭉텅이로 조금씩 알아간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자기가 알게된 개인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하기 보다는 조직에서의 평판도에 좌우됩니다. 조직에서 성실하다고 하면 그것이 성실한 것입니다.
결국 일대일의 만남이 아닌 여러 사람 속에서의 자기 위치 찾기라 하겠습니다. 개개인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일원으로 만나는 개념이 강합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조직문화와 서열이 강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는 조직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관계 맺음은 한 사람을 만나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기본적으로 관계설정이 위계 질서 하에서의 자리 파악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간의 예의는 서로가 정하는 것이라기 보다 주위와의 조화가 중심입니다. 싫은 사람이라도 싫다고 피하면 안되겠죠.
지금까지의 정리를 발전시키면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많은 문화적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관계 맺음이 개개인의 이해를 찾기 보다는 조직 안에서 조직의 질서에 따르는 것이기에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구성원이 기존의 조직 안에 어울리고 적응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됩니다.
하나하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기 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을 쉽게 걸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평판을 조금씩 알리면서, 그리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되면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조직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형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이 제각각 사람을 알아가기 보다 조직 속에서 자리를 찾아가기 때문에 눈치를 심하게 봐야 합니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도 조직의 논리에 동화되어야 합니다.
집단의 의견에 자신의 의견을 동조하는 현상이 강합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조직의 색깔에 맞추는 것이 보다 중요하니까요. 사람은 한 개인으로 알기 보다 조직 안에서의 한 구성원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남자보다도 여자 사이에서 특히 더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집단 주의가 약하고 개인 주의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달리 여자들은 자기 주위 사람들의 의견에 더 예민합니다.
이는 공감대를 찾는 것을 중요시 하는 여성들의 심리적 특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미국에서 보는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나라 국민들의 법에 대한 마인드 (3) | 2011.06.23 |
---|---|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 (1) | 2011.06.18 |
우리 나라에 부족한 미덕 - 서로 양보하는 마음 (1) | 2011.03.02 |
어학 연수를 가려면 이왕이면 대도시로 (0) | 2010.10.03 |
토론 문화의 기본은 대화 에티켓을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 (2) | 2010.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