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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보는 한국

토론 문화의 기본은 대화 에티켓을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 문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하나 꼽는 것이 그들의 대화 방식이다.

미국인들 다섯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고 하자.
그 중의 A가 말한다. 나머지 모두는 그 말이 끝날 때까지 듣는다. 그리고 난후 다른 사람이 말을 이어간다.

이것이 너무나 인상적이라는 내말이 어리둥절한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을 한 번 보자.

성질 급하기로 소문난 라티노 다섯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고 하자.
그 중의 A가 말한다. B도 말한다. C도 말한다. D도 동시에 말한다. E도 다 듣지 않고 끼어든다. 농담 같지만 농담반 진담반이다. 어느 한사람도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이야기할 기회를 누리기가 힘들다.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나서 서로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 지 기억할 수도 없다.

자 어떤가. 위 두 그룹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경우 어느 그룹의 대화가 보다 생산적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어디에 속할까?
불행한 일이지만 후자에 가깝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말 끊고 들어오고, 누가 말하건 말건 듣지도 않고 자기 말 하는 사람들도 나온다.

난 지금까지 식사 자리에서 오고 가는 대화 상황을 묘사했다. 친구나 친지 간에 식탁 위에서 오고 가는 대화란 그 얼마나 정겹고 격식없는 것인가.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도 서양인들은 대화함에 있어서 서로 배려를 한다. 남의 말이 하는 동안을 참지 못하고 말 끊고 들어오는 일이 없다. 말같지 않은 말이 이어져도 묵묵히 일단은 다 듣는다. 그리고 그 이후 한사람씩 다시 돌아가면서 의견을 말한다. 마치 우리의 토론석처럼 말이다. 물론 백퍼센트 언제나 그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설전이 오고 갈 지도 모르고 주의산만한 존재가 하나 있어서 분위기를 흐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어김없이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런 가운데서는 자기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마음이 든다. 상대가 내가 하는 이야기에 공감을 하건 안하건 들어주고 존중해준다는 기분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말이 끝난 후에도 다음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말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차례차례 질서있게 이야기가 오고가니까 주제가 산만해지지도 않는다. 하나의 주제가 마무리 되고 난 후에서야 다른 주제로 옮겨간다. 그러므로 내가 꺼낸 주제는 충분히 검토받을 수 있다.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식사 시간에서도 이러하니 하물며 의견을 서로 나누는 토론 자리에서는 어떻겠는가? 한 사람이 말을 하면 도중에 다른 사람이 함부러 끼어들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학생과 교사간에도 말이다. 대화나 토론 가운데서 상대의 발언을 존중하는 에티켓이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토론 석상에서 마저도 상대방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해 주지를 못한다. 도중에 말끊고 들어오는 경우는 예사고 서로 목청껏 딴 얘기를 하다보면 주제는 어느덧 중구난방, 사공이 많은 배는 어느덧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제대로 된 토론 문화가 형성되려면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인 대화 예절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말할 때는 다른 사람들은 함부러 끼어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발언권에 대한 존중이다. 상대를 존중할 때, 나의 발언권도 존중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질서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질서가 있는 곳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어떤 의제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게시판에 글을 쓰고 달리는 댓글들을 읽어보면 가끔 어이없는 경우가 있다. 본문을 미처 다 읽지도 않은 채 댓글을 다는 사람들 때문이다. 조금 읽다가 도중에 흥분해서 인지, 아니면 제목만 보고 대충 짐작하고서 인지 본문에 적어놓은 설명을 까맣게 무시한채 하는 질문들이나 반론들이 나오는 것이다. 제대로 다 읽지도 않고서 비판조의 댓글을 다는 용기란.. 글을 읽을 때도 이렇게 성미가 급하니 대화할 때는 오죽할까도 싶다. 이런 댓글들에 대해 답을 하려면 힘이 빠진다. 길게 시간을 들여 조목조목 의견을 밝혔는데 제대로 보지도 않고서 핵심과 관련없는 삼천포로 빠지는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면 말이다. 원래 의견을 나누고 싶었던 주제에서 한참 벗어나게 되는데 힘이 빠지지 않을 수 있는가.

사람들 가운데 '토론해 봐야 소용없어. 다 제 할말만 하다가 마는 걸.' 이렇게 의견을 나누고 대화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충분히 공감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제대로 된 토론 문화 아니 대화의 기본 에티켓을 아직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발 남이 말할 때,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지 좀 말고 딴소리 좀 하지 말자. 이 가장 기본이 안된 상태에서 어찌 배려있고 질서있는 대화를 나누기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일까? 이것만 제대로 바로 잡혀서 훨씬 생산성있는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