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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보는 한국

타블로 광풍: 한국인의 오지랍 문화

한국에 있을때,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주위의 시선과 간섭이다. 내가 무엇을 하건 간에 그것을 내버려 두지 않고 꼬치꼬치 따지고 충고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어딜가나 사람들은 나만의 생각을 찾고 자신만의 삶을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어떻게 생각할까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들이 한다고 하면 나도 해야하는 분위기가 그런 가운데서 형성되는 것이다. 외부적인 패션이나 트렌드같은 것은 둘째치고 아주 개인적인 부분에서까지 남들을 의식하는 것을 보면 정말 피곤해 보인다. 자신만의 연인을 선택하는 순간 마저 남들이 우리 커플을 어떻게 볼까를 고민하는 것은 그야말로 압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남들이 보기 안좋다고 하면 본인이 좋아하더라도 사귀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남의 시선에 예민한 것은 우리 특유의 공동체 문화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농경사회적이거나 유교적인 가치다.
공동체 문화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가치는 개인적이고 내부적인 것이 아닌 집단적이고 외부적인 그것이 되기 싶다.
한국인들이 남달리 성공과 출세 노이로제에 걸리는 이유도 이러한 남의 시선에 예민하고 외부의 잣대에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는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만족한다, 이만큼이면 족하다'라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면 이만큼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생각한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 속에서의 남들의 시선이란 아무래도 주관적인 삶의 행복기준보다 더 엄격하고 냉혹하기 쉽다. 그러한 외부의 시선에 신경쓰다 보면 '나의 삶은 나의 것'이라는 주관적인 만족도보다는 '남들을 이기지 않으면 남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경쟁주의, 일등 지상주의에 젖기 쉬운 것이다. 여기서 비교문화와 서열문화가 태동하게 된다. 하기야 남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면 1등이 중요하고 금메달이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1등만 기억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에서 성취감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1등에 목을 매달게 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인가. 일등만이 중요하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2등만 해도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나온다. 1등이 아니면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의 잣대로 자신의 삶을 재지 못하는 사람들은 남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함에 대한 욕구불만을 못 벗어나고 1등에 대한 컴플렉스를 계속 자신 안에 쌓아나갈 수 밖에 없다.

외부의 시선에 민감한 사회에서 허세란 어쩌면 필연적인 병리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각 분야에 1등과 능력자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들은 자신의 순수한 노력과 성취만 가지고 자신을 어필하기 어렵다. 일등이 아닌데 어디 명함을 내밀겠는가. 또한 획일적인 잣대 아래 1등만 대접받는 분위기라고 생각하니 남들로부터 자신의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받는다고 피해의식에 젖기도 쉽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행복의 기준을 정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의 비교와 서열 속에서 성취도와 자존감, 그리고 행복을 찾으려고 하니 다른 이들은 조화가 아닌 경쟁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과대포장하려는 욕망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허세와 구라는 자라난다. 허세와 구라는 스스로를 분칠하는 일이다. 성형이나 화장과도 같다. 자신의 본질이야 어떠하건 겉으로 잘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일종의 허세벽이 있는 사람은 남들에게 어떻게든 인정받으려고 한다. 그만큼 자기 자신을 존중해주지 못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고 그만큼 내면은 공허하기 쉽다.

타블로 광풍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타블로를 의심했다. 그의 자랑이 허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다스러운 일개 딴따라가 스탠포드란 명문대를 수석 졸업했다고 하니 그럴리 없다는 인지부조화를 느꼈을 것이다.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성공기준, 가치 판단 기준에 매몰된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스탠포드 우수 졸업생이란 수재가 버젓한 직업을 갖지 않고 자유인의 행보를 갖는 것이 한국에서 너무나 드문 일이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외부적이고 획일적인 삶의 성취기준이 유행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또한 그는 한국인들에 잠재되어 있는 서열과 비교 컴플렉스를 자극했을 지도 모른다. 주위에서 들려지는 수다를 통해 항상 잘난 이들의 이야기에 노출되고 위축되고 비교의식과 서열의식에 노이로제가 걸려있는 사람들은 타블로가 미국 명문대를 졸업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 허세이기를 바랬을 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허세로 드러난다면 뭔가 위선을 부수는 듯한 통쾌함을 맛봤을 지도 모른다. '거봐 나만도 못해보이는 네 까짓게 무슨 스탠포드냐, 역시 넌 나보다 못난 놈이야' 하면서 말이다. 여전히 그가 스탠포드 출신임을 의심하는 사람들 마음 속에는 이러한 심리가 있을 지 모른다.

남의 시선에 얽매이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선택권은 최소로 줄어든다. 그리고 무엇을 하건 남들과 비교당하기 쉽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기도 어렵다.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오지라퍼들이 많아서 열등감에 젖기도 쉽다. 누가 뭐래도 나를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남들의 시선 때문에 괴로움을 느낄 일이 없다. 자기 스스로가 불만족스러워서 괴로울 뿐이다.





우리는 언제가 되어야 서로가 서로를 하나의 잣대 안에서 재려는 것을 멈추게 될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나 신경쓰는 일을 멈추게 될까? 함부로 비교하고 평가하고 상처주는 일을 멈추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