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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보는 한국

미녀가 많은 한국, 그러나 개성을 느낄 수 없는 미인들

외국에서 오래 머물렀다가 한국에 들르면 그렇게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다. 정든 고향에 오랫만에 들르는 기분인데 나쁠 것이 없다. 작년에 들렀을 때 복작거리는 서울의 거리를 다닐 때는 얼마나 좋았던지 자동차 매연마저도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 여자들이 얼마나 예쁜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평균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훨씬 더 날씬하고 잘 꾸며 입으니까 눈이 즐거웠다. 왜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 여자들이 이렇게 이쁜지 몰랐을까.

 

미국에 체류중인 한국 남자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한국에선 평범한 여자들도 미국에 건너오면 이 된다. 미국의 한국 사회에는 심각한 성비 불균형에 시달리는 곳이 많다. 예외적으로 뉴욕은 여자가 많아서 여초 현상이 있다고 듣긴 했었다. 그러나 많은 다른 도시에서는 대개 남초 현상이 심하다. 그러므로 한국 여자들을 만날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 그래서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서 남자들의 시선을 자주 잡을 기회가 없었던 여인들이 미국에서는 존재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아 공주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이런 기분을 충분히 느끼게 된다. 한번 만나는 것에도 굶주린 남정네들이 계속 달착지근하게 지분거려 줄 것이다. 고로 공주의 경험을 해보고 싶은 여자들은 남초현상이 심한 외국의 한국 커뮤니티로 가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자 뭔가 다른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 미녀들이 많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거리에 나가는 일이 설레어지고 반갑지만 첫날 만큼은 아니다. 사람은 환경에 금방 적응하게 되기 때문일까?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아마 외국같다온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금방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이쁘긴 이쁜데 뭐랄까 개성이 없다는 느낌, 고만고만하고 차별성이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처음에 서울 거리에서 걸을 때는 이 여자 보고 우와’, 저 여자 보고 우와하며 걸음이 중심을 잃고 갈짓자 횡보를 한다. 빨리 가야하는 데 딴데 정신이 팔려서 빨리 갈 수가 없다. ‘, 저 여자는 미국에서 오랜 시간 볼 수 없었던 환상적인 이상형이다. 이런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 속에 이런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렇게 이상형이라 여겨졌던 여인이 슬쩍 지나치기도 전에 또다른 미녀가 저기 어딘가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거 왠일이냐. 오늘 두명이나 미녀를 만나네.’ 그런데 왠걸, 지하철을 타자 마자 앞서 두 여인은 금방 기억에서 포맷되고 만다. ‘아니 뭐 이렇게 미녀가 많아!’ 서울에서 미녀가 아닌 여자는 살기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작거리는 서울에서 매일 매순간 접하게 되는 미녀들을 보면서 자신감을 잃고 심리적으로 위축당할 경우가 많을 것 같다. 피곤하게도 비교 대상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 남자들의 눈이 머리 끝에 달려있게 되는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스쳐지나간 미녀들의 잔상이 아른거려서 내 바로 곁의 또순이에게 마음을 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미녀들의 행진에 익숙해져서 인지 갑툭튀한 미녀를 보게 되어도 심드렁해진다. ‘뭐 또 금방 다른 미녀가 나올텐데 뭐.’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들뜬 상태로부터 벗어나면서 첫 며칠 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뭔가 다들 비슷비슷하다는 느낌, 뭔가 똑같다는 느낌이 든다. 왜 한 명의 미녀를 보았을 때 그 감동이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연기처럼 기억에서 사라졌을까? 비슷한 미녀들이 즐비하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저 여자가 아니더라도 그랑 비슷한 여자를 금방 또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들 너무 비슷해 보인다. 한 개인을 볼 때, 한 개인으로서 차별화된 특별한 특징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머리 스타일이나 패션이 비슷비슷해서일까? 무시할 수 없는 점이다. 한국 사람들은 체감상 거의 70% 이상이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작년에는 여자들이 앞머리를 내리고 커트한 스타일이 유행했나 본데 어쩌면 다들 하나같이 그렇게 하는 지(특히 여고생들) 놀라왔다. 3년전에는 여고생들이 하나같이 깻잎머리를 하고 다녔는데 그런 머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다들 같은 곳에서 옷을 산 것처럼 옷입는 취향도 그렇게 비슷비슷할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것이?

 

근데 패션만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성형을 다들 같은 취향으로 해서일까? 남자들은 쌍거풀이 많지 않은데 여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쌍거풀이 있는 것처럼 많이다. 그럴 지도 모르지만 그것만이 답인 것 같지는 않다.

 

김치볶음밥으로 비유를 하고자 한다. 김치볶음밥은 종류가 다양하다. 기름으로 볶은 것도 있고 버터로 볶은 것도 있다. 깨를 뿌린 것도 있고 김을 뿌린 것도 있다. 참기름을 부은 것도 있고 계란을 올린 것도 있다. 참치를 넣은 것도 있고 소세지를 넣은 것도 있다. 온갖 다양한 김치볶음밥이 있어서 제각기 다른 맛을 자랑한다. 그러나 다른 음식들과 함께 비교한다면 김치볶음밥은 어떻게 만들었건 다같은 김치볶음밥일 따름이다. 스시, 탕수육, 햄버거, 카레, 피자가 있는 테이블 위에서 김치볶음밥이 제 아무리 변신을 해보아야 사람들에게는 그저 김치볶음밥인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이와 같다. 물론 사람들은 다 다르다. 다들 자기 생각이 있고 외모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그러나 또한 매우 비슷하다. 한국에서만 있으면, 외국인들을 만나지 않으면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닮았는지 잘 모른다. 외모만 놓고 봐도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인을 보게 되면 아 저 사람은 한국인일 것이다금방 알 수가 있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보는 순간 느낌이 온다. 어떻게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화장법이나 패션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생김새도 비슷하다. 외모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가치관이나 취향도 비슷해 보인다. 마치 한 배에서 나온 형제자매처럼 말이다. 얼척없이 비유하자면 4천만 쌍동이를 만나는 인상이라고나 할까.

 

우리끼리만 모여있을 때는 서로 간의 사소한 차이가 크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한국사람들간의 서로 다른 차이점보다 서로 닮은 유사점을 더 많이 알게 된다. 한국에서 유대감과 일체감의 정서가 강한 것과 동질성을 차별성보다 강조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왜냐면 서로 너무 비슷하다. 차이점을 느끼기에는 서로 닮은 구석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앞서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왜 한국의 수많은 미녀들을 보면서 금방 심드렁해지게 되었는 가는 다들 비슷해서 한 사람으로서의 개성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 비슷비슷한데 굳이 한 미녀에게 매력을 느끼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 미녀는 또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을 텐데, 아니 비슷하지만 조금 더 나은 미녀를 만날 수 있을텐데, 오늘 힘들게 억지로 접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미녀들을 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매력을 풍기고 있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질리지가 않는다.

 

미국은 스스로 자신의 문화적인 장점을 다양성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화가 서로 녹아서 융화된 멜팅 팟이건, 또는 섞이지 않고 제각각 따로 노는 따로 국밥이건 간에 아무튼 다양한 인간들이 섞여서 산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날 때도 선택의 폭이 넓다. 음식을 고를 때 보다 많은 메뉴가 있다고나 할까. 마찬가지로 이성을 선택할 때도 한사람 한사람이 보다 개성적으로 구별되어져서 다가온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뭔가 다른 냄새를 풍긴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매력은 다른 사람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것이고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을 많이 스쳐지나가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