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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과 '발견'

조기 교육과 자율 교육이 왜 중요한가.


머리는 시간이 흐를 수록 둔해집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른 신체 기관들처럼 노화라는 장벽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살면서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의 머리가 예전보다 좋지 않고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스스로 자각하는 순간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경험이란 것이 쌓였기 때문입니다. 경험으로 익숙해진 것은 그저 반복하면 되는 것입니다. 처음 한 번 하는 것과 여러 번 해낸 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번 했던 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은 두뇌에 큰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반복된 행위를 통해 익숙해진 것은 새로 머리를 사용하지 않아도 능숙하게 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분야를 만나게 되면 자신의 머리가 십대 시절과 이십대 시절에 비해 얼마나 퇴보했는 가를 확연히 깨닫게 됩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엔 능력이 퇴보되었기 때문에 낯선 새로운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20세 이후로 순발력이 감소하기 시작하여 30세가 넘어서면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는 있어도 잘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40세가 넘어서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마저 느끼게 됩니다.
30대의 어른이 자기 주위에 있는 십대의 철부지들을 보면서 그들의 사고 능력이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여길 지도 모릅니다. 말하는 수준이 낮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지식의 절대량이 자신들보다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로 따지자면 하드에 있는 데이타의 용량이 턱없이 적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자신들의 데이타가 십대의 수준에 불과하다면 그들은 결코 십대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결국 세월 속에 쌓아올린 지식의 절대량으로 노인 세대들은 젊은 세대들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수용 능력은 어른이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것이라는 것은 여러 사례를 통해 드러나 있습니다. 늑대 소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숲 속에 버려졌던 갓난 아이들이 나중에 인간 세계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 야생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아이의 지능 수준과 언어 능력에 머무르고 말더라는 사례들 말입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인간의 언어 수용기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으며 그 순간을 지나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학설이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또한 이는 조기 교육의 결정적인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위 링크에 들어가면 여섯살 때 발견된 개들에 의해 길러진 우크라이나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언어 습득 외에 학습 능력의 결정적 시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보기 중에 하나가 프로 바둑 기사가 아닐까 합니다.
바둑의 재능은 20세 이후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을 99%의 대국 결과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로 바둑 기사의 20세 이전의 실력과 성적은 그 이후 거의 변하지가 않습니다. 20세 이전에 실력에서 밀린 사람에게는 대부분의 경우 늙어 죽을 때까지 밀리고 맙니다. 그리고 프로 기사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순수한 수읽기 능력에서 자신의 능력은 20세 전후에 거의 완성되었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수읽기 능력이야말로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힘, 경험치에서 가장 거리가 먼 순수한 사고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두뇌회전 순발력은 20세가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세 이후에 바둑에 입문한 사람 중에서는 프로기사가 나올 수가 없게되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 어느 분야인가에서 새로운 것에의 도전은 비용에 비해 효율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한국 교육에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앞서 밝혔듯이 십대의 시기는 한 인간의 재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 시기입니다. 평생을 통해 사용할 도구를 만드는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십대 이후 이십대에 새로 알게되고 노력해서 쌓아올리는 것은 십대의 일이년에 노력해서 얻는 것에 비한다면 그저 그런 소소한 수준의 성취도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십대에 언어 능력을 또래보다 최대한 계발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사람은 그 이후에 또래에서는 적수를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면 다른 이들이 뒤늦게 노력해 본들 대성할 수 있을 타이밍을 이미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한국 교육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십대와 그 이전 시기의 조기 교육이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 한국 교육이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생들 각자가 자신이 재능있다고 생각하는 영역을 스스로 파고들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자율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