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색' 과 '발견'

전쟁과 문명의 관계, 야만과 근대의 차이

인구 5천만이 넘는 단일 민족을 자랑하는 한민족. 이것은 가볍게 넘길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그저 단일 민족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수가 5천만이 넘는다는 것 때문이다. 우리는 십억이 넘어가는 이웃 중화민족을 보면서 5천만이 뭐가 그리 큰 숫자인가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일 언어권으로서 북한까지 포함해 7천만이 넘는 숫자가 지구 땅 한구석을 차지하고 단일한 역사로 천년이 넘게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언제나 우리의 비교대상이 되는 슈퍼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을 제끼고 다른 나라들을 보자.

 

우리와 축구 경기를 했던 코트디부아르에 존재하는 언어가 모두 몇개인지 아는가? 60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보다 훨씬 적은 천백만 인구인데도 말이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에 수많은 소수 민족이 존재하고 수많은 소수 언어들이 존재한다. 중국도 중화민족외에 소수 민족들의 언어들이 있다. 십억이 넘는 인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토착어는 힌두어이다. 그런데 이 힌두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2억이 되지 않는다. 수백개의 민족과 수백개의 언어로 이루어진 국가가 인도다. 그들을 한 국가로 묶을 수 있어온 것은 아마도 종교가 첫째였을 것이다. 그럼 둘째는 무엇일까? 아마도 영어일 것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2차 세계 대전 이후 제국 주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 새로 탄생한 많은 나라들의 국경선은 인위적으로 그어진 것들이 꽤된다. 아프리카의 나라들에 유럽 제국주의가 들어가기 전에 국가란 개념이 있었을 것 같은가? 아니 그렇지 않다. 조그마한 수많은 부족들이 존재했을 뿐이다. 일단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는 자체적으로 사용되는 글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나일강 문명의 끝자락에 놓인 수단이나 이디오피아가 다른 대륙의 왕국과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하로 내려갈 수록 문명은 다른 근대화를 탄 것들과는 다른 성격을 유지해왔다. 이를테면 우리 나라 청동기 문명 이전의 부족 사회와 같은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적도를 둘러싼 열대 지방에 존재했던 많은 부족들이 부족 사회나 씨족 사회의 상태를 유지했다. 아프리카나 아마존 지역이나 파푸아 뉴기니, 인도네시아, 버어마와 같은 아시아의 열대우림 지역에는 지금도 수많은 씨족 사회, 부족 사회가 존재한다. 제각기 다른 언어를 가지고서 말이다.

 

그들의 삶을 보면 우리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삶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일례를 들자면 버어마와 타이 국경선 근처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수 민족 중의 하나인 (영화 그랜토리노에 나오는 흐몽족도 그 중의 하나) 카렌(Karen) 족의 이름에는 성()이 없다. 한번 생각해 보자. 이름에 성이 없는 사회. 과연 그들은 근친혼을 피할 수 있을까? 누가 같은 핏줄인지 성이 없으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나 그들은 근친혼을 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서부터는 확인되지 않은 필자의 가정이다). 만약 근친혼이 허락되는 사회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부족이 작기 때문에 근친혼을 막으면 종족 번식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조그마한 씨족 사회에서 사는 방식이다. 이른바 근대 문명권에서 살았던 그 누군가가 와서 이것을 보고 미개하다거나 야만적이라고 할 수 없다. 성경을 보자면 대홍수 이후에 살아남은 여덟명의 노아 일가족은 서로 교합하여 인류를 다시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상황에서 근친이라고 성교를 막는 것은 대를 끊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지구 상 위에 존재하는 언어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지구상 위에 존재하는 글자들은 지금도그 언어의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서구 유럽에는 알파벳 하나만이 글자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글자를 만들어낸 국가들은 강한 국가들이었다. 씨족 사회나 부족 사회로 머물러 있던 사람들은 결코 글자를 만들지 않았거나 못했다. 그리고 어떤 동기 때문이었던건 간에 정복자가 출현해서 씨족 국가들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약탈하고 여자들은 강간하고 남자들은 살육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결국 씨족 사회를 강제로 해체시켜 보다 큰 단위의 문명권으로 편입시켰던 경우에는 글자를 이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언어들이 사라져 갔다. 큰 문명권은 그 큰 문명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복잡한 도구들이 필요하다. 글자, , 제도, 문화와 같은 것들이다. 칼로 상대를 베어낸 이후에는 이러한 문명화의 이기들이, 해체되고 복속된 씨족 사회와 부족 사회에 도입된다. 곧 씨족 사회는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잃어버리고 큰 문명권에 동화된다. 고유의 언어를 잃어버리는 대신에 글자로 대표되는 문명을 얻는 것이다.

 

유럽이나 북아시아 문명권이 다른 곳들보다 강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 중에서도 눈에 띄는 한 이유는 정복자가 많았다는 점이다. 아동 위인전에 위인이랍시고 자주 출현하는 인물들은 정복자들이다. 유럽의 알렉산더, 시이저, 나폴레옹은 모두 전쟁광들이다. 이외에도 유럽 사회를 뒤흔들었던 수많은 군사 천재들과 정복자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들이 있었고 로마를 비롯한 여러 수많은 거대한 통일 제국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이웃 중국에는 무수한 통일 전쟁이 존재했으며 제국을 건설한 사람들은 다른 면으로 다른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한 학살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진시황과 징기스칸이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웃 중국의 중화민족은 15억이 넘는다고 한다. 여러분은 이들이 과연 처음부터 하나의 민족이었을 것이라고 믿는가?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 전에는 수많은 다른 씨족사회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로 정복당해서 지금은 하나의 핏줄처럼 된 것이다.

 

반대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아마존의 수많은 종족들이 지금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들이 유럽의 침략 이전에는 서로 뿔뿔이 흩어져서 존재하고 커다란 하나의 세력권 안에 편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 그들에게는 알렉산더나 징기스칸이나 히틀러가 나타나지 않았디 때문이다. 그들이 평화를 사랑해서 서로 전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리고 잔인한 독재자가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평화의 결과가 발전없는 정체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런 이유보다는 곡식을 기르는 농경사회가 되기 힘든 기후 조건을 큰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많이 이야기되어진다. 수렵과 사냥이 생활의 중심이 되는 열대우림지역에서 큰 문명권이 성립할 이유는 별로 없고 설령 존재했을지라도 유지하기 어려웠 것이다. 그러나 큰 문명권 아래에 있지 않았기에 다른 민족들이 발전시키고 혜택을 누려온 이른바 문명의 세례를 누리지 못하고 이른바 야만이나 미개라 불리는 삶을 살았던 것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의 삶이란 자연의 한부분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느끼게 한다. 자연은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인위적인 가치개념을 갖는 도덕률과 같은 당위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게 된다내지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자연 법칙의 인과율에 따라 움직인다. 인과율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 당연히 정의도 도덕도 없다. 먼 후세에 그들의 후손들이 보다 번성하게 만든 자들은 평화주의자들이 아니라 남의 종족들의 평화를 빼앗고 침략을 통해 가로챘던 침략자들이다.

 

평화애호주의자에서였건 아니면 전쟁이나 약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였건 서로 제각각의 씨족 사회를 유지했던 열대의 부족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잘아는 유럽민족들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강제로 분해되고 2차 대전 이후 어설픈 국가로 탄생하게 된다. 민족 개념도 없던 그들에게 국가 사회의 개념이 얼마나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겠는가? 이건 마치 청동기 문명에서 갑작스레 현대 문명으로 넘어가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와 달리 유럽의 침략을 경험했을지라도 인도나 중국은 금방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발전을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유럽의 침략 이전에 수없이 많은 전쟁과 제국을 경험했기 때문이고 문명과 제국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세계의 기준으로 볼때, 한민족은 제법 큰 단일 문명권을 유지하고 있다. 천년이상 단일 국가를 유지한 것도 (정권 교체는 있었을지라도) 세계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그 많은 수가 하나의 말을 사용하는 것도, 독자적인 글자를 가지고 있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삼국시대 이전에도 하나의 문명권이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 수많은 씨족과 부족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삼국에 의해 침략당하여 보다 큰 세력권 안으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아프리카가 뒤늦게 경험하게 된 일을 우리는 다행히도매우 일찍 경험했던 것이다. 그것은 국사 시간에 배웠듯이 한반도라는 곳에 철기라는 전쟁과 정복을 위한 칼과 무기가 이른 시기에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피를 흘린 후에 단군 신화나 종교와 같은 문화 침략을 통해 하나의 국가라는 개념을 피침략자들에게 심었고 그들을 성공적으로 편입시켜서 하나의 문명권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야 조그만 땅이니 하나의 세력권이 된 이후에는 반란 전쟁 따위가 일어나기 어려웠다. 이웃 중국은 워낙 거대한 대륙에 워낙에 많은 민족들이 있었고 워낙 많은 외세에 둘러싸였기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수없이 많은 침략자와 정복자들이 탄생했다. 다시말해 끝없이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그리고 하나의 문명권으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이후에는 엄청난 수퍼 파워가 되는 잠재력을 갖게 되었다.

 

유럽은 수없이 많은 제국과 수없이 많은 전쟁이 있었음에도 중국처럼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다. 중국보다는 보다 호전적인 민족성들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보다 너무 서로 다른 인종의 풀을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섬나라 영국과 북극곰 러시아 때문일까?). 2차 세계 대전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루고서도 여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어느 정도 서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방인들을 침략했던 로마 제국의 덕분이 1차고 서로마의 멸망이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근원이 되어준 프랑크 제국의 덕분이 2차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인류는 전쟁을 통해서 발전했다. 수많은 살인과 약탈과 강간이 벌어졌던 전쟁 속에서 인류 문명은 보다 발전했다. 전쟁 후에 하나의 거대한 문화권이 탄생할 수 있었으며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은 문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또한 전쟁 후 침략을 통해 얻은 거대한 문화권을 유지하기 위해 제도와 문물은 보다 발전될 수 밖에 없었다. 침략 후에 강하고 새로운 문화들이 전파되었으며 작고 약한 것들은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파괴자는 동시에 새로운 창조의 기회를 여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상 어딘가 귀퉁이에 남은, 아직도 정복자, 침략자나 전쟁을 경험하지 않고 남은 순수한 씨족사회들은 여전히 순수한 상태를 유지한채 우리가 가져야하는 고도의 규율이나 질서를 필요로하지 않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전쟁의 비극을 많이 겪어야 했던 구대륙은 신대륙을 지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