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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보는 한국

미국의 잘 갖추어진 지식 시스템

미국에 와서 놀라게 되고 부러워 하게 되는 것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이 나에게는 그들의 양과 질에서 우리와 비교가 안되게 잘 갖추어진 지적 시스템이다.

여러가지 다양한 박물관들이 많은 것은 그중의 아주 사소해 보이는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온갖 종류의 다양한 박물관과 전시관들이 역사와 자연 과학, 그리고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과거에 살지 않았던 사람들도 마치 과거의 한자락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산체험의 현장이 박물관과 기념관, 전시관이다. 한국에 가볼 만한 박물관이 무엇이 있을까? 미국에는 자연사와 과학을 마음껏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부터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숨쉬고 있는 민속 박물관들이 넘쳐난다. 자연사와 과학에 관한 대표적인 박물관은 잘 알려진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뉴욕 자연사 박물관이겠고, 동서고금의 삶의 모습들을 잘 재현해 놓은 박물관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뉴욕만 해도 미국 현대 건축사를 정리한 구겐하임 박물관,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박물관, 유태인들의 삶과 역사, 문화를 기록한 박물관, 인디언 박물관 등등이 거리에 넘쳐난다. 박물관이 아니라고 해도 여러 건물 안에 기념관과 전시관이 있어서 역사를 체험하게 도와준다. 예를 들어 시립 도서관의 전시관과 같은 것이다. 워싱턴은 이보다 더하다. 링컨, 제퍼슨과 같은 기념관은 그 자체가 그 당시의 시대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며, 미국 의회 도서관의 전시관도 유명하다. 미국 전쟁에 관련한 여러 기념관들에 홀로코스트 박물관, 범죄에 관련한 박물관까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박물관을 천천히 구경하는 것만으로 몇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박물관, 기념과, 전시관들이 질과 양에서 풍부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인들이 먼 과거부터 여러 가지 자료를 잘 기록하고 보존해 왔기에 가능하다. 이것은 단지 예술적인 문화재 몇 점을 보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자료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문화가 잘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박물관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지 미국에서 와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것은 과거와 역사의 산 체험이지 문화재와 볼거리의 관람이 아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달라스에는 존 에프 케네디 암살 기념관도 존재한다. 그게 뭐 자랑스러운 역사라서 기념관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돈 내고 입장할까? 그것이 아니라 그 시기를 정리하는 장소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63년의 사회 모습과 암살 소식에 받은 충격을 마치 오늘처럼 생생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박물관과 기념관은 과거를 여행하는 타임머신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에 이런 타임머신 역할을 제대로 하는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조선시대 한국인의 생활상이 아니라 멀리 이집트에서 건너온 미이라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의 자료 문화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박물관을 말했지만 이것은 우리와 미국의 자료 데이타 베이스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박물관보다 중요한 지적 시스템은 많다. 도서관이나 교육 시설의 문제는 자본 인프라의 문제니 그렇다고 치자. 일단 발간되는 서적의 양과 질에서 한국은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는다. 청계천과 한강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 문제를 피부로 쉽게 느낄 수 있는 예를 들겠다. 당신이 어떤 하나의 질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에 관한 자료를 찾으려고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에 갔다고 치자. 당신이 그 질문에 대해 자료를 구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자면 미국에서는 여러 다양한 데이타북부터 무수한 자료들이 넘쳐난다. 당신은 그 하나의 질문에 대한 책들을 다 읽기도 전에 죽을 지도 모른다. 만약에 설탕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고 하자. 한국 서점에서 설탕에 관해 찾을 수 있는 자료가 얼마나 될 것 같은가? 미국에 설탕에 관한 책이 얼마나 존재하는 지 알고 싶다면 Amazon.com에 가서 Sugar를 쳐보라. http://www.amazon.com/gp/search/ref=sr_adv_b/?search-alias=stripbooks&unfiltered=1&field-keywords=sugar&field-author=&field-title=&field-isbn=&field-publisher=&node=&url=&field-feature_browse-bin=&field-binding_browse-bin=&field-subject=&field-language=&field-dateop=&field-datemod=&field-dateyear=&sort=relevancerank&Adv-Srch-Books-Submit.x=46&Adv-Srch-Books-Submit.y=14

위 링크를 따라가보면 알겠지만 Sugar를 키워드로 검색된 책이 23,800여권이다. 그중에서 건강 관련으로 분류되는 것이 3,700, 역사 1,500, 과학 1,600, 비즈니스 2,100권이다.

이것도 시중에 판매되는 책들만 열거한 것이지 지금까지 간행되어왔던 자료들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염두에 두자.

여담이지만 다른 보기로 한국 경제(Korean economy)에 관해서 한번 찾아보자. 803권의 책이 뜬다. 일본의 거품 경제(Japan bubble economy)에 관한 책은 35권이 검색되었다.

 

미국에서 자료를 찾고 검색을 하면서 뼈져리게 느꼈던 점은 상상을 초월하는 자료의 방대함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한국어로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한계를 가지고 있는 가를 깨닫게 했다. 한국어로 제대로 된 자료가 많이 있어야 한국어로만 조사를 하고 연구를 할 것이 아닌가? 미국에서 제일 놀라왔고 부러웠던 것 중의 하나가 정부나 여러 기관에서 만든 1차 자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세세한 정보까지 다 보여줄 때이다. 예를 들자면 이백년전 이전의 인구센서스 자료까지 말이다. 어느 나라 출신이 어느 주에 얼마나 사는 가까지 이백년 전부터 주르륵 나와있다. 왜 그런 것까지 그 옛날부터 자세하게 조사했는 지 모르겠지만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양 역사 자료들을 보면 매우 오래전의 일들도 자세하게 수치로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요즘 학자들이 그당시 상황에 관해 GDP가 어땠을까도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맑스가 대영도서관 안에 앉아서만 자본론을 썼다는 배경을 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료들이 너무나 다양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굳이 내가 발로 뛰어 새로운 자료를 찾아낼 필요가 없을 정도인 것이다. 한국에 대해 연구하고 싶어도 한국에 있는 것보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을 불과 몇년전에도 들었었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동아시아 문화를 전공하고 싶으면 북경대보다 하버드대에 가라는 이야기도 말이다. 그것이 충분히 공감이 간다. 자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쌓여있는 출판물과 간행물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무수한 자료들과 서적들이 미국에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그러니 미국에서 한국을 공부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철학에는 철학사라는 책이 있다. 한국에 철학사 관련 서적은 한 오백여 종류가 검색된다. 영어로 된 철학사 서적들은 그 자체로 작은 서점을 하나 차릴 수도 있다. 단권으로 된 철학사 말고 수십권으로 된 철학사 서적도 쌓여있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역시 아마존으로 가보면 된다. 굳이 미국까지 확인하려 올 필요는 없다.

History of philosophy로 검색되는 제목이 6,600, philosophical history로 검색되는 제목이 680권이다. 제목이 아니라 키워드로 검색하면 70,000권이 뜬다.

 

사족으로 한국 지성계의 편향성도 위험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출판물이 한곳으로 편중된 현상 때문이다. 한국의 출판에서 사회 과학 서적은 주로 사회주의 계열이다. 그렇기에 관심을 갖고 조금만 글을 찾아 읽으려고 하면 사회주의의 세례를 벗어나기 어렵다. 사회주의가 피해야할 금서는 아니다. 그것이 여기서의 주장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관점의 책들은 거의 출판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균형이 잡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주로 사회 진보주의를 자처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런 책들이 인기가 주로 잘 팔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억압이 심했던 역사의 흐름에 따른 학자들의 반발이 드러난 결과일 지도 모른다. 인문학의 사조가 주로 프랑스나 독일 유학파들에게서 흘러나왔기 때문일 수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튼 한쪽의 생각이 모두는 아닌데 너무 한쪽에만 서적 출판이 경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 쓰여진 사회 서적은 결론을 안봐도 미리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한가지만 보는 곳에서는 한가지만 말하는 것이 편향된다는 것을 자각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사실은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책들을 읽다보면 한쪽에만 치우치기 쉽다는 것이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무서워진다. ‘보수는 논리도 없고 양심도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 지성계가 편향되었다는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보수가 논리도 양심도 없다고 믿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보수주의를 잘 설명한 책들은 찾아 보기 어렵고 그에 반해 그를 공격하는 책들만 가득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사회주의적인 사상이 아닌 다른 주장이 묻혀져 알려지지 않고 찾아볼 수 있는 책들이나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글 좀 읽었다 하는 학생들이나 지식인들은 보수나 자유주의는 이론적 근거가 없는 비양심적인 것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국가 미국도 역시 지성이 없는 나라인 것처럼 오해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발행되는 서적과 연구 논문의 수는 양과 질에서 한국을 압도한다는 것을 상기했으면 한다. 번역서라면, 다시 말해 원저자가 영어를 사용하거나 프랑스, 일본말을 사용한 책이라면 한국에서 찾을 수 있는 책은 미국에도 있고 미국에서 찾을 수 있는 책 중에 한국에는 없는 것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