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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이슈와 의식

"노력제일"이라는 경쟁주의에 찌든 한국 교육




노력하면 다 할수 있다면서

수능 고득점 따기 위한 경쟁에 학생들을 내모는데서 현재 우리 사회의 비극이 잉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에요.
그것도 비인간적인 수준까지 노력해야 진짜 노력이라면서 
비인간적 수준의 수험경쟁에 내몰면서 학생들이 다른 것들을 모두 희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봐야 상대평가제인 수능에서 서열은 나뉠 수 밖에 없고
높은 서열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오직 하나의 줄세우기 경쟁만 하고 다른 것들은 배우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한채 성인이 되고 맙니다.
이런 쓰레기같은 교육철학이 지배하는 한국 교육계에서 길러진 학생들은 
자아성찰없이, 진정 자신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한채 불완전변태를 한채 어른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숨막힐듯한 경쟁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노력하면 다 된다 이렇게 노력 만능론을 펴는 교육자들이나 학부모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노력하면 된다, 노력은 숭고하다'는 식으로 미화하는 것이지만 그 속뜻은 학생들이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미친듯이 공부만 해서 조금이라도 더 성적을 쥐어짜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노력을 미화하고 노력을 포장하고 노력이 절대인 것처럼 꼬드기는 것은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미친듯이 공부하게 만들려는 어른들의 몰핀입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모든 이가 수능을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명제입니다.

같은 노력을 했을 경우 나타나는 학습 성취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나오고

A와 B에서의 성취도의 차이 (머리의 차이)는 크지 않아서 노력으로 극복가능할 수도 있을 지 모르고

B와 C의 성취도의 차이는 두세배 이상 차이가 나서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사람마다 노력으로 다다를 수 있는 성취도는 차이가 있다고 봐야지 하나로 뭉뚱그려 노력으로 다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노력을 통해 사람마다 어느 정도로 어디까지만 극복이 가능하지, 노력이 모든 것을 다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수능은 상대평가지 절대 평가 방식이 아닙니다. 석차가 중요한 거지 절대 평균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90점 맞아봐야 상위 1% 안에 들지 못하면 명문대를 가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죠?

남들도 노력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남들보다 더 노력하면 되는 겁니까?

그런데 남들도 더 노력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런 남들보다 더 더 더 미친듯이 노력하는 되는 겁니까?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노력 경쟁을 유도하는 슬로건이 

노력하면 다 된다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학창시절에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것은 겨우 이런 것들입니다.


사람마다 정해진 재능의 한계는 있고 그것은 노력으로만 극복할 수 없습니다.

노력한다고 다 서울대 갈 재능은 아니니까
서울대 못갔다고 해서 자신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고 난 최선을 다하지 못했어 하며 자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NBA에서 뛰지 못하면 다 실패한 농구 선수입니까? 노력하지 않은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능력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출발선도 다른 남들과 자기를 비교 대상으로 삼기 보다

자기 자신이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얻는 성과에 만족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비교대상은 남들이 아닌 자기 자신이어야 합니다.
남들과 비교질하면서 좌절하고 열등감에 빠지고 시기질투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그 안에서 꿈을 꾸어야 합니다.

헛된 꿈만큼 독이 되기 쉬운 것도 없습니다.